지난 9월18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에 관한 사설을 하나 실었다. '한국의 재정 확대는 다른 나라들의 모델(South Korea's fiscal boost is a model for others)'이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한국을 예로 들며 독일로 하여금 재정 지출 확대를 압박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한국이 경기 침체에 대응해 확장적 재정으로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독일도 한국을 배우라고 충고했다.
이 사설은 정부가 2020년 513조원 규모의 초팽창 예산안을 발표한 직후 나왔다. 마침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재무건전성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던 때였다. 외국 유수의 언론으로부터 '모범생' 대접을 받은 한국 정부는 어깨가 으쓱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이후 확대 재정의 당위성을 설파할 때 종종 이 사설을 인용하고 있다.
10월 취임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신임 총재도 한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세 나라를 지목하며 적극적 재정을 주문했다. 한국 정부와 여당은 역시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여기저기 퍼나르고 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경기가 침체 국면에 있을 때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IMF에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자리를 옮긴 크리스틴 라가르드도 독일에 확장적 재정 정책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달리 독일은 IMF, ECB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부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추가 부채를 낼 의향이 없다"며 외부의 재정지출 확대 요구를 일축했다. 우리 정부 주장대로라면 독일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IMF, ECB가 재정 확대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지 배경부터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한국을 비롯한 3개 나라에 적극적 재정을 요구한 배경에는 글로벌 무역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글로벌 무역의 성장세가 차질을 빚고 있다"며 "글로벌 무역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는 동시에 나라별 정책 대응도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언급은 글로벌 공조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 한국, 독일 등 특정 국가의 경제 침체에 대한 처방책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나 독일은 규모는 다르지만 모두 수출 주도형 개방 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두 나라가 돈을 풀 경우 그 효과는 그 나라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독일이 확장적 재정을 펼친다면 그 온기는 유로존 국가 전체로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 IMF, ECB 등이 줄기차게 독일에 재정 지출을 요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독일은 자국의 재정건전성을 위협받으면서까지 돈을 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은 제도적으로도 확장 재정에 대한 제동장치를 두고 있다. 독일은 1990년대 중반 재정위기를 겪은 이후 헌법에 부채 제동(debt brake) 조항을 추가했다. 2016년부터는 구조적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0.35%를 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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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우리도 과연 초팽창 재정 확대가 우리 경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확장적 재정은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효과는 잠시일 뿐이다. 독일이 IMF와 ECB의 갖은 압박에도 왜 꿋꿋이 버티고 있는지도 우리 재정 당국이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IMF가 우리의 재정을 대신 걱정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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