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 이상한 질문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김도언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침묵 중에서 수요일이 제일 좋다는 것은 올바른 취미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네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오해 중에서 피아노가 제일 좋다는 것은 가능한 도덕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비밀 중에서 손수건이 제일 좋다는 것은 아름다운 용서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여섯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약속 중에서 색연필이 가장 좋다는 것은 진실한 절망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친절 중에서 소나기가 가장 좋다는 것은 섬세한 낭만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여덟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랑 중에서 가로등이 가장 좋다는 것은 예리한 타락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아홉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기억 중에서 북서쪽이 가장 좋다는 것은 거룩한 환상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스무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오후 한 詩] 이상한 질문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김도언
AD
원본보기 아이콘


■ 이상한 질문들이긴 하다. 그렇긴 한데 질문이란 원래 이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보통 접하는 질문은 어떤 정보, 예컨대 나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를 알고자 하거나 특정한 답, 말하자면 정답을 요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질문들은 우리를 전혀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올바른 취미"라든지 "가능한 도덕" "아름다운 용서" "진실한 절망" "섬세한 낭만" "예리한 타락" "거룩한 환상"과 같이 본질적이며 그것도 논쟁적인 형식("가장")의 질문들은 우리의 평온하고 안락했던 삶 전체를 일순간 정지시키고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시에 적힌 질문들은 "이상"하다기보다는 우리가 일생을 바쳐 궁구할 만큼 근원적인 것들이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25일만에 사의…윤 대통령 재가할 듯 [포토] 12년만에 서울 버스파업 "웰컴 백 준호!"…손흥민, 태국전서 외친 말…역시 인성갑

    #국내이슈

  • "애플, 5월초 아이패드 신제품 선보인다…18개월 만" 디즈니-플로리다 ‘게이언급금지법’ 소송 일단락 '아일 비 미싱 유' 부른 미국 래퍼, 초대형 성범죄 스캔들 '발칵'

    #해외이슈

  • 올봄 최악 황사 덮쳤다…주말까지 마스크 필수 [이미지 다이어리]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푸바오, 일주일 후 中 간다…에버랜드, 배웅시간 만들어

    #포토PICK

  • 첨단사양 빼곡…벤츠 SUV 눈길 끄는 이유 기아, 생성형AI 탑재 준중형 세단 K4 세계 첫 공개 벤츠 G바겐 전기차 올해 나온다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국가 신뢰도 높이는 선진국채클럽 ‘WGBI’ [뉴스속 용어]코코아 t당 1만 달러 넘자 '초코플레이션' 비상 [뉴스속 기업]트럼프가 만든 SNS ‘트루스 소셜’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