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이상한 질문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김도언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침묵 중에서 수요일이 제일 좋다는 것은 올바른 취미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네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오해 중에서 피아노가 제일 좋다는 것은 가능한 도덕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비밀 중에서 손수건이 제일 좋다는 것은 아름다운 용서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여섯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약속 중에서 색연필이 가장 좋다는 것은 진실한 절망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친절 중에서 소나기가 가장 좋다는 것은 섬세한 낭만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여덟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랑 중에서 가로등이 가장 좋다는 것은 예리한 타락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열아홉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여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기억 중에서 북서쪽이 가장 좋다는 것은 거룩한 환상입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스무 살짜리 아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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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질문들이긴 하다. 그렇긴 한데 질문이란 원래 이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보통 접하는 질문은 어떤 정보, 예컨대 나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를 알고자 하거나 특정한 답, 말하자면 정답을 요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질문들은 우리를 전혀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올바른 취미"라든지 "가능한 도덕" "아름다운 용서" "진실한 절망" "섬세한 낭만" "예리한 타락" "거룩한 환상"과 같이 본질적이며 그것도 논쟁적인 형식("가장")의 질문들은 우리의 평온하고 안락했던 삶 전체를 일순간 정지시키고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시에 적힌 질문들은 "이상"하다기보다는 우리가 일생을 바쳐 궁구할 만큼 근원적인 것들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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