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 "검열은 난센스...영부인과 이름 같다고 삭제"
한국영상자료원, 내년 3월까지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전시
"검열 많이 당했지만 의식한 적은 없어…스스로 검열하면 더 위험"
“숱한 검열을 견뎌온 것이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별들의 고향(1974)’,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낮은 대로 임하소서(1981)’ 등을 연출한 이장호(74) 감독의 회고다. 그는 1980년대 충무로 리얼리즘의 선구자다. 현실의 진실성을 보존하기 위해 영화 장치의 조작 개입을 최소화한 만큼 검열의 벽에 자주 부딪혔다.
이 감독은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전시 기념 간담회에서 “검열이 난센스였다”며 “‘바람 불어 좋은 날’ 속에 ‘영자를 부를까나 순자를 부를까나’라는 해병대 노래가 있었는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름과 같다고 ‘순자’를 삭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ㅅ’만 잘라내서 ‘운자’라고 만들었는데, 그렇게만 잘라도 관객이 알아듣고 웃었다. 그 정도로 검열이 난센스였다”고 했다.
‘황토(1975)’, ‘화려한 외출(1977)’, ‘만추(1981)’ 등을 만든 김수용 감독은 “그동안 검열로 잘린 필름의 길이가 서울에서 부산을 왔다 갔다 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선택해도 될까 말까 한데 그런 식으로 코너에 몰아넣고 영화를 만들었으니 제대로 되었겠느냐”라며 “당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에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자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남의 영화를 잘랐던 거다”라고 했다. 이어 “만약 검열이 없었다면 한국 영화는 30~50년 앞서나갔을 거다. 봉준호 감독이 50년 전에 나왔을 거다”라고 아쉬워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사 100년간의 검열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유부인(1956)’ 속 남녀 주인공의 입맞춤과 ‘서편제(1993)’의 정사 장면 등이 대표적인 예. ‘오발탄(1961)’이 상영됐을 때 삭제된 미군이 여성을 희롱하고 아기를 등에 업은 엄마가 목을 맨 장면 등도 공개한다. 당시 내무부 치안국장(경찰청장)은 정부 문서에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부정하고 절망 속에 방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실업자, 무산 계급의 반항과 자포자기를 조장한다”고 적었다.
영화사학자 김종원씨는 “등급 심의는 개방된 서구에도 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영화 검열을 해왔다. 제5공화국 때 가장 극심했다. 일제강점기 이래 수행된 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서구에서 이야기하는 엄격한 등급 심의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이 감독은 검열을 견뎌 한국 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영화는 100년 역사 동안 계속 얻어맞고 자랐다.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흙수저의 자수성가 입지전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고난을 견뎌낸 것이 지금의 영화 번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검열에 있던 시대에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검열을 많이 당했지만 의식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검열하게 되면 더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