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먼지 집 짓다/박마리
그 어디든 고여 있는 곳이라면 터를 잡지요 틈새일수록 더 좋아해요 그래서 증류되지 않는 무형의 것들로 모여 등을 맞대고 살지만 무엇을 밟고 일어서려고 하지 않아요 쌓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가벼운 것으로 친다면 수다스러운 여자의 입보다 더 가볍지요 그러나 한번 자리 잡았다 하면 밀어내기 전 제 스스로 떠나는 법이 없지요 우리들의 손길만 닿지 않는다면야 얼기설기 집 하나 짓는 것 일도 아니지요
젖는 걸 싫어하는 우리들처럼 먼지도 젖는 걸 싫어해요 뽀송뽀송한 것만 좋아해요 그래야 집 짓는데 수월하거든요 비록 구석진 곳이지만 안으로 고여 흐르는 저 침묵 경이롭지 않나요
자신들 집에 민들레 씨앗 하나 날아와 앉기를 기다리는 희망, 느려도 서두르지 않아요 낮게 웅크린 희망이 더 강하게 자란다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늘 구석진 곳에서 세월 보내요
먼지집이라고 해서 아무한테나 가벼운 건 아니지요 집 없는 사람한테는 무겁지요 가난할수록 더 많이 달라붙으니까요 현장에서 일하는 이 씨 어깨에 오늘도 그만큼의 먼지가 쌓였네요 그곳이 제 터인 양 집을 지어요 아마 그게 오래되었을 거예요 지지대를 짚고 일어서 보지만 그만의 노동으로는 좀처럼 먼지집이 붕괴되지 않네요 그래도 이 씨는 오늘을 내려놓지 않아요 식구들의 아침을 건져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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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없고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없고 가난하다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며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틈새에 모여 살아도 그들에게도 건져야 할 “식구들의 아침”이 있고 “자신들 집에 민들레 씨앗 하나 날아와 앉기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없고 가난하지만 또한 그 누구도 밟고 일어선 적 없으며 느려도 서두른 적 없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먼지 같은 사람들, 그들이 경이로운 까닭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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