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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고려인 박 할머니의 꿈 "반세기만 찾은 고국, 자손과 함께 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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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연해주 이주 시작
스탈린 명령으로 6000㎞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강제이주
50여년 만에 처음 밟은 땅 "전혀 낯설지 않아"

한국 생활 11년째를 맞은 고려인 박칼리나(왼쪽·63)씨와 그의 남편 방빅토르씨. (사진=이현주 기자)

한국 생활 11년째를 맞은 고려인 박칼리나(왼쪽·63)씨와 그의 남편 방빅토르씨. (사진=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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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드문드문 외국어 간판이 보이고 어느새 한 간판 건너 한 간판이 러시아어로 바뀔 무렵 버스에서 내렸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고려인문화센터 '너머'로 가는 길이었다. 안산에는 고려인 1만8000여명이 산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CIS 국가에 살고 있는 한민족 동포들이다. 러시아어로는 '까레이츠', 동포인 스스로는 '고려사람'이라고 부른다. 한국어가 서툰 고려인들은 모여 사는 것을 선호한다. 고려인 박갈리나(63)씨를 너머 인근 카페에서 지난 22일 만났다. 남편 방빅토르(66)씨도 동행했다.


박씨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 올해로 11년째가 된다. 부모님의 정확한 고향은 알지 못 하지만 자신은 밀양 박씨라고 했다. 박씨에 따르면 부모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연해주로 옮겨갔고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스탈린은 1937년 일본 첩자 행위 방지와 카자흐스탄에 농업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공식적 이유로 고려인들을 몰아냈다. 일본과의 대립을 우려한 스탈린의 명령이었다. 연해주는 1863년 함경도 농민이 최초로 이주를 시작하면서 망명·항일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전후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넘어 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임시 정부 ‘대한 광복군 정부’가 자리 잡은 항일독립운동의 전진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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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에서 6000㎞ 떨어진 우즈베키스탄에 다시금 터를 잡은 박씨의 부모는 억척스럽게 살아냈고 박씨를 낳았다. 여전히 박씨는 한국어가 서툴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자이고 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에 와본 적이 없었지만 그에게 한국은 처음부터 전혀 낯설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박씨는 "다른 나라에 가면 무섭고 속이 아이(아니) 편한데 어째 그런지 여기는 고향 같고 다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랑이 한국에 들어오던 날 비행기에서 내릴 적에 '땅에다가 입 맞추자'라는 말을 했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기반 마련했지만 고국 방문 하고파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 느껴
돌 세 개만 한국 산에 묻어 달라는 부모 유언
비자 문제 여전히 난항

낯섦과 마주하며 살았던 세월. 그 동안 피부로 느꼈을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고단했을 터이다. 박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혼자 카페를 운영했는데 툭하면 주변 사람들이 와서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참 좋은데 일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했지만 한국에 오고 싶었다. 먹고 살기가 더 좋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있었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박씨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한국은 산도 많고 바닷물도 있고 꽃도 곱고 나무도 있다'하시면서 '그렇게 예쁘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10대 시절 하루는 일을 마치고 공장에서 돌아오던 박씨의 머릿속에 산과 강이 있는 예쁜 동산에서 마치 자신이 살았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지곡로, 옛 선부동 일대 '뗏골마을'에는 러시아어가 병기된 안내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이현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지곡로, 옛 선부동 일대 '뗏골마을'에는 러시아어가 병기된 안내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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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한 번 기거(起居)를 하고 싶다, 그렇게 오고 싶다 하셨는데 나이가 많아서 못 왔어. 본인이 죽으면 한국 산에다 돌을 세 개만 놓아 달라고, 그럼 당신이 한국에 와서 묻혀 있는 것과 같다고... 여기 와서 나도 처음 바다를 봤는데..." 박씨는 말을 잇지 못 했다.


방문취업(H2)비자로 한국에 처음 들어온 박씨는 주로 공장에서 일했다. 자동차 부품이나 냉장고 조립하고 화장품 포장 등을 했다. 공장 일거리가 없을 때는 가정부로도, 식당에서도 일을 했다. 그냥 한국에 계속 살고 싶었다고 했다.


자식과 손주들 모두 함께 모여 이 곳에 살고 싶지만 비자 문제로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자녀들은 대부분 방문취업비자로 단기간 머물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 중이다. 그들의 고국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씨는 "최근 재외동포(F4)비자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져 걱정이 된다"고도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박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수 심수봉이 번안해 부른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이 흘러 나왔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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