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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쏟아진 산업사회, 프랑스 청춘들의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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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 수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으며 그 뒤를 이은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집회서 44장9절)


젊음은 한없이 들뜨거나 뜨거워지기 쉽고 그래서 때론 더 절망적이기도 하다. 통성명도 하지 못한 이성에 대한 동경으로 생애 가장 큰 용기를 내는가 하면 부모에 대한 냉소와 반항을 넘어 환멸까지 느끼기도 한다. 어느 시대, 어떤 계층을 막론하고 거치게 되는 이 성장통은 그래서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는 추억이 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지난해 콩쿠르상 수상작인 니콜라 마티외의 소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1992년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퇴락한 프랑스의 한 동북부 소도시에서 15살 소년 앙토니가 성인이 되기까지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시기 도시는 수입원인 제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가 속출하고 각 가정과 지역사회는 갈등으로 신음한다. 프랑스인과 이민자의 갈등,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갈등, 노령층과 청년층의 갈등, 회사와 노조의 갈등, 파리와 지방의 갈등, 남편과 아내의 갈등 등 프랑스 사회가 지닌 거의 모든 종류의 갈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날마다 거리에서 방황하던 앙토니는 우연히 알게 된 부잣집 소녀 스테파니와 만나기 위해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파티 장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도난당하면서 앙토니의 부모가 이혼하는 계기가 된다. 중학교를 간신히 마친 앙토니는 고등학생이 되고 이후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의병 제대한 뒤 하루하루 집세와 식료품비, 담뱃값, 각종 할부금을 걱정해야 하는 저소득 임금노동자가 된다.

반면 좋은 집안,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에서 공부만 강요받으면서 어떻게든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던 스테파니 역시 변해간다. 꾸역꾸역 지식을 욱여넣다 보니 사물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 가고 성공한 삶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훗날 바쁘고 존중받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멋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산을 더 견고히 하는 엘리트와 물려줄 유산 하나 없이 뿌리 뽑힌 사람들의 격차를 알아가면서 그렇게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멀어져 간다. 때로 소년과 소녀들은 이 지긋지긋한 사회 시스템을 전부 뒤엎고 아주 멀리 음악과 바다가 있는 곳에서 소박하게 지내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실패해 계층 사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신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진 못한다.


앙토니와 스테파니 그리고 주변 청소년들 각자가 처한 상황, 자기가 놓인 사회적 위치에서 갖게 되는 삶의 태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프랑스인들은 이 소설에서 1990년대 프랑스를 읽고, 거기에 공감하며, 같이 분노하고 쓸쓸해하다가 주인공 앙토니와 함께 성장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오를 수 없는 계층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오늘날의 '흙수저 청춘'들의 모습 또한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겪어낸 지난 시간들, 정의할 수 없는 인생의 슬픔과 처절함을 이해할 수 있는 당신은 이미 '존재한 적 없는' 청춘을 지나 어른이 돼버렸다.

/니콜라 마티외 지음·이현희 옮김, 민음사, 1만7000원

/니콜라 마티외 지음·이현희 옮김, 민음사,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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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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