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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사과는 용서받을 때까지/이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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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에서 잘못한 일로 발갛게 익어 가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사과해야 할 일들과 사과 받을 주소들이 많다

세시풍속이 그렇듯 포장되고 배달되는 사과

두 손으로 쪼개기는 힘이 들어서 깎아야겠다

길에 서서 대충 받은 사과까지 동그랗게 깎아야겠다

잘못한 일이 많아서 풍년이 들었다는 사과가

북상 중이라는데

부담 없게 사과할 때는 한 상자를

해묵은 사과를 할 때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식목일 전에 보내는 것도 좋은 사과지만

추신으로 단맛을 적어 보내면 더 좋은 사과

꽃에서 나왔으니까

꽃을 버린 기억으로 스스로 붉어지는 사과

사과는 사과를 갖고 하는 것도

입이나 손바닥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사과하고 싶다면

깊숙이 들어 있는 멍을 풀어 주고 싶다면

용서받을 때까지

늦가을 사과나무처럼 서 있어야 한다




■ 이 시에서 ‘사과’는 일종의 펀(pun)이다. 즉 ‘사과’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하고, 사과나무의 열매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맥락은 시의 마지막에서 통합된다. 즉 “사과하고 싶다면” “용서받을 때까지” “늦가을 사과나무처럼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덧쓰자면 사과마저 다 떨어진 “늦가을 사과나무”처럼 그렇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과란 “꽃을 버린 기억으로 스스로 붉어지는 사과”와 같이 어쩌면 사과한다는 마음마저 버리고 오로지 “용서받을 때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뉘우쳐야 한다는 그런 뜻이지 않을까 싶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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