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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동사무소로 간다/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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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등에 업혀 면사무소를 갔다 할머니 이빨 사이로 새어 나간 금냄이 호적계장 귓등으로 들은 금란이는 원래 금남이었다 쇠 같은 손주가 태어나길 기다렸던 할머니는 끝내 금남을 기다리다 돌아가셨다


이름을 쫓아내지 않아도

까마귀에서 까마귀 냄새가 나듯

금냄이나 금란이나 하나인 나로 가득하다

앞으로 보면 금란이요

뒤로 보면 금냄이가 뒤통수에 따라붙는다


세 개의 무거운 이름에서

균형 잡힌 커피 향이 흘러나오도록

자판기 구멍에 동전을 넣고 기다린다


복주머니, 복주머니라고 부르니

사방에서 복이 떨어진다

황금알이 된 금란이

죽은 할머니를 업고 동사무소 간다


[오후 한 詩] 동사무소로 간다/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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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면서도 왠지 짠한 시다. 이 시에서 "세 개의 무거운 이름"이란 '금란'과 '금냄' 그리고 '금남'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이름들 중 시인이 '금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사연은 "쇠 같은 손주"를 원했던 할머니가 '금남'을 '금냄'으로 잘못 발음한 것을 면사무소 호적계장이 또 어떻게 찰떡같이 '금란'으로 잘못 들어서였다는 것이다. 말에는 주술성이 있다. 특히 욕망이 투사된 말은 더 그렇다. 그래서 이름은 때로 한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고 결정짓는다. "쇠 같은" 남자가 "황금알"이 가득 든 "복주머니"가 된 까닭은 두 번의 오인 때문이지만, 그 두 번의 오인은 오히려 시인의 생을 주조하고 완성한 셈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괜히 궁금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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