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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어젯밤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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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이제 진짜 시가 되었다고 믿고 싶어요.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은 그대로 두고 감을 용서하셔요. 생각보다 빨리 나를 잊어도 좋아요. 부탁 따로 안 해도 그리 되겠지요. 수녀원의 종소리,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새, 눈부신 햇빛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군요."


기도와 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수녀 시인 이해인의 '미리 쓰는 유서'에서 발췌한 시의 구절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태생과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죽음이라는 숙명. 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홀로 마주할 때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가 유언(遺言)이다. 유언을 적은 글을 유서(遺書)라고도 하는데 자살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 어감을 준다고 해 유언장으로 많이 쓴다.

두 달 전 오늘 서울 북한산 자락길에서 생을 마감한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유서는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정 전 의원이 2011년 종합 문예지 '한국문인'에 기고한 가상 유언장이 다시금 회자됐다. 가족에 대한 무한 사랑, 정치인으로의 힘든 삶, 부모님에 대한 후회 등을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에 담담하게 담은 가상 유언장은 인간 정두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일본에서는 2박3일 동안 조용한 곳을 찾아가 삶을 돌아보고 유언장을 작성하는 '유언 투어'가 여전히 적잖이 인기다. 상속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면서 생겨난 일본 사회의 변화상인데, 재산 분할뿐 아니라 떠나는 이가 남겨진 자에게 진심을 전하는 장(狀)으로 더욱 인기를 끈다고.


가상 유언장에 개인적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7년께 한 부서에서 일한 상사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데 지나치게 공감하고 자랐던 터라 가상 유언장의 필요성은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문인 101명의 가상 유언장을 모아 2006년 엮은 책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을 다시 꺼내든 것은, 구름다리 건너 하늘로 가 있던 나의 어젯밤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다.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던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산업부 김혜원 기자 kimhye@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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