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 녹슨 솥 곁에서―고대(古代)/장석남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부엌문이 열리고

솥을 여는 소리


누굴까?

이내 천천히

솥뚜껑을 밀어 닫는 소리


벽 안에서

가랑잎 숨을 쉬며 누워

누군가? 하고 부를 수 없는 어미는


솥뚜껑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에

크고도 깊은 쓸쓸한 나라를 세웠으니

국경처럼 섰는 소년이여

아직 솥을 닫고 그 자리에 섰는 소년이여

벽 안의 엄마를 공손히 바라보던 허기여


그립고 그렇지 않은 소년이여

팔을 들어 두 눈을 훔치라


[오후 한 詩] 녹슨 솥 곁에서―고대(古代)/장석남
AD
원본보기 아이콘


■ 이 시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저 '시경'의 채시관(采詩官)이었다면, 나는 이 시를 가장 맨 앞자리에 묶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만 이렇게 비탄하고 가탄하였을 것이다. "누군가? 하고 부를 수 없는 어미"의 안타까움이여, 그 "크고도 깊은 쓸쓸한 나라"여, "국경처럼 섰는 소년이여", 소년의 철없는 허기여, 그러다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을 어린 마음이여. 누가 그 허기진 시절을 두고 함부로 그립다고 말하려 하는가, 아니 '가랑잎처럼 숨을 쉬던 어미'의 "쓸쓸한 나라"를 지금에서야 분별없이 되살리려 하는가. "팔을 들어 두 눈을 훔치라". 마구 눈물을 흘려라. 오로지 그뿐이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