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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죄·3자 뇌물죄 판단 가른 '默示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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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제시된 강요나 뇌물수수 등의 범죄요건이 다양한 법적 해석을 낳고 있다. 두 분야 모두 '묵시적'이란 단어의 해석을 요구하는데, 대법원이 기존 해석을 바꿔버리거나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는 등 향후 재판에 미칠 영향이 큰 판결을 내놨기 때문이다.


일단 대법원은 29일 상고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네며 '삼성그룹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등 사이에 '묵시적 부정 청탁'이 성립됐다고 본 것이다.

묵시적 부정 청탁의 인정요건으로 법원은 대가관계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공감)'을 요구해왔다. 1984년 영동 부정대출사건 이후 이 요건은 꾸준히 재판부의 판단 기준으로 여겨졌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인식이나 양해의 정도(程度)에 대해서는 정의된 바가 없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그동안 정의되지 않은 정도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전날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삼성이 최씨가 실소유한 동계스포츠센터에 16억원을 지원한 것은 묵시적 부정 청탁과 함께 건넨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면서 "당사자들의 인식은 뚜렷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인식했다고 볼수 없어 묵시적 청탁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의 법원 판단처럼 대가관계에 대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모두 인식하고 있었느냐 여부를 중점적으로 심리하고, 그 정도를 '명확'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가의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미필이란 확신하지 않더라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예상만 해도 인정된다는 의미다. 즉 대법원은 대가 인식 정도를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명확'이 아닌 '미필'로 선을 그은 것이다.

그동안 묵시적 부정 청탁 존재 여부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 판례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전통적 판결 관점을 뒤엎은 셈이다. 또 이 같은 관점은 향후 법원 판결에도 적용돼 묵시적 부정 청탁에 대한 해석이 포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또 박 전 대통령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 최순실씨가 대기업에게 요구한 미르ㆍK스포츠 재단 등 후원에 대해 '강요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일부 강요죄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으로 제시된 개념인 '묵시적 해악 고지'도 일리 있는 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과 관련한 상대방에게 이익의 제공을 요구하고 상대방은 공무원의 증언에 따른 직무에 관해 어떠한 이익을 기대하며 그에 대한 대가로서 요구에 응했다면 그러한 요구를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의 고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박정화ㆍ민유숙ㆍ김선수 대법관은 피고인들이 등 일부 대기업들에 용역계약 체결을 요구한 것은 '묵시적 해악 고지'에 의한 강요죄로 인정돼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묵시적 해악 고지는 강요받는 상황, 관계, 지위뿐 아니라 요구에 응하게 된 경위가 강요받는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면 강요죄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시 말해 박 전 대통령의 당시 국정운영 방식, 사회 분위기와 이에 대한 평균적인 사회인의 인식을 반영한다면 충분히 강요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원칙적으로 권위에 의한 강요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당시 통수권자(박 전 대통령)나 고위공직자(안종범 수석)의 요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한 부분이 있어 반대의견에 더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 국민연금 지원 등 당시 상황들에 대해 승계작업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그 동안 이 부회장 재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도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주장해왔다. 검찰 관계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승계작업'을 계속 언급하면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어졌고, 검찰 수사에도 날개를 달게 됐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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