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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명량'과 '안시성'의 명암이 갈린 이유

최종수정 2019.07.26 13:52 기사입력 2019.07.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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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7'

[Encounter]'명량'과 '안시성'의 명암이 갈린 이유


김규종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쓴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7’은 영화 열다섯 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반도 역사를 다룬 영화들을 소개하며 소위 ‘국뽕(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을 지적한다. 역대 가장 많은 관객(1761만5437명)을 동원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부터 도마에 올린다.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이끈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왜군과 공방을 벌이던 조선수군이 위기에 처하자 백성들이 바다로 나아가 힘을 합쳐 승리를 이뤄낸다. 김 교수는 “말도 안 되는 허구"라고 잘라 말한다. “감독의 애국충정에 불타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21세기 역사왜곡이다. 그래서 국뽕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그는 병자호란을 다룬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2007년)'에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는다. “가공할 육량시(六兩矢)를 자유자재로 쓰는 청의 명궁 쥬신타(류승룡)에 대적하는 조선신궁 남이(박해일)를 등장시켜 애국적인 민족혼을 한껏 불어넣은 게다. 역사적 사실과 너무도 달리 전개되는 영화에 747만 관객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며 열광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사항으로 결합한 한국의 애국주의 관객들."


[Encounter]'명량'과 '안시성'의 명암이 갈린 이유


지난해 개봉한 ‘안시성’에서도 비슷하게 공감을 유도하는 연출을 볼 수 있다. 안시성 백성들이 땅굴을 파서 당나라군이 쌓은 토산을 붕괴시키는 작전이 대표적이다. 포클레인 같은 굴착기도 없던 태곳적 백성들이 삽과 곡괭이로 순식간에 거대한 땅굴을 판다. 그것도 모자라서 도끼질로 거대한 기둥을 잘라내는 신통방통한 요술을 보여준다. 김부식의 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밤낮으로 흙산 쌓기를 계속해 안시성 안을 굽어보게 되었다. 부복애에게 군사를 거르니고 산꼭대기에 머무르며 지키게 했는데, 산이 무너져 성을 눌러 무너뜨렸다. 마침 복애가 자리를 비워 고구려군 수백 명이 무너진 곳에서 나와 흙산을 점거하고 주위를 깎아 지켰다. 당주는 노하여 복애를 참수했다.”


영화에서 양만춘(조인성)은 토산의 붕괴를 기획하고 점령할 계획을 빈틈없이 수립한다. 토산을 지키려는 고구려군과 되찾으려는 당나라군의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끝없이 이어진다. 인해전술과 물량공세로 총공격을 감행하는 당 태종(박성웅). 예비한 수레바퀴가 동나고 화살마저 바닥을 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 양만춘은 휘하장졸에게 주몽의 신궁을 가져오라 명한다. 힘겹게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허공 위로 쏘아올린다. 이어지는 장면은 야사에 쓰인 그대로다. 화살이 당 태종의 눈에 적중한다. 같은 시각 고구려의 정예병사들이 당나라군의 배후를 급습하면서 전투는 아름다운 승리로 마무리된다.

[Encounter]'명량'과 '안시성'의 명암이 갈린 이유


안시성은 국뽕 요소를 많이 넣고도 544만186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김 교수는 협량하게 그려진 연개소문(유오성)이 양만춘과 목례조차 주고받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양만춘은 안시성을 지켜냈고,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수호했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기실 양만춘은 단 한 번도 고구려 수호의 변을 토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안시성 사수에 있다. 아마도 이런 점이 객석의 설득력을 약화시켰는지 모를 일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상호 협력해야 했던 걸출한 두 인물의 적전분열과 갈등이 아름답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영화는 자잘한 디테일도 많이 무너져 있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만큼 취약한 구조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주필산 전투의 계절을 늦가을로 보여주고 같은 시간 안시성의 계절은 여름으로 설정한 점, 오른쪽 어깨에 창을 찔린 양만춘이 왼쪽 어깨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점 등…. 이런 요소는 영화의 설득력과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시공간을 충실하게 되살려내야 영화의 상상력도 살아난다. 기왕 국뽕으로 위안과 용기, 희망을 주고 싶다면 작은 것부터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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