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작은 마을인 빈치(Vinci)로 향했다. 이유는 단 하나. 560여년 전 그 마을에 살았던 한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피렌체에서 빈치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지만 가는 길은 마치 수백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하늘로 가득 찬 시야는 불필요한 생각들을 깨끗이 지워내며 그림자로 멋을 부리는 구름들을 무념한 듯 바라볼 수밖에 없다. 토스카나 와인의 명성에 걸맞은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천년의 올리브 나무는 오랜 이야기를 머금은 듯 여유로운 자태다. 곳곳에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풍광의 정점을 찍는다. 시간을 초월하고 아름다움을 넘어선 모습에 심취한 순간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을 법한 중세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전체가 고성의 소박한 정취로 가득한 빈치. 그곳은 자신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만나고자 하는 어린 레오나르도는 1452년 4월15일 이 마을과 바로 인접한 안키아노에서 태어났다. 빈치의 고성에서는 올리브 숲을 따라 그의 생가가 있는 언덕을 향해 도보로 갈 수 있다. 지금 그 길은 '초록빛 길'이라고 불리는데 아주 오래전 레오나르도가 수도 없이 뛰어다녔을 바로 그 길이다. 그는 사생아로 부모의 성을 따를 수도, 함께 살 수도,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한 부재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려는 어린 레오나르도를 생각해본다. 구름과 바람, 비, 새와 곤충, 나무와 꽃, 까만 밤과 별, 그리고 무엇보다도 끝없는 하늘. 어린 레오나르도의 손에는 채워진 책 대신 비워진 종이와 연필이 함께했다. 마을 신부님은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당시 매우 귀하던 종이를 종종 가져다주셨다. 고딕 양식의 산타크로체 성당은 레오나르도가 5세 때 세례를 받은 곳으로 지금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레오나르도가 소년이 돼 피렌체로 떠나기까지 그에게는 생각의 틀이 채워지지 않았다. 빈치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는 바로 빈치의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다.
시간이 흘러 그 이름과 영원히 함께 기억될 빈치는 인류의 역사상 위대한 천재로 남은 레오나르도를 위한 마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19년 그의 사후 400주년을 기념해 12세기 유적인 구이디성을 그를 위한 뮤지엄으로 구상한다. 이곳은 레오나르디아노 박물관(Museo Leonardiano)으로 1953년 4월15일 레오나르도 다빈치 탄생 500주년에 맞춰 개관했다. 그곳을 채울 수 있는 건 현재 15점 정도만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이 아닌 어린 레오나르도를 기억할 수 있는 빈치만의 것이어야 했다. 결국 이 뮤지엄은 그의 창조적 발상이 담긴 설계를 실물로 재현해낸 특별한 곳이 됐다. 레오나르도가 처음으로 고안해낸 예술과 과학이 접목된 60여개의 모형이 그곳에서 되살아났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된 천재의 고향과 제법 어울리는 박물관이 아닐 수 없다. 그 옆에는 레오나르도 도서관(Biblioteca Leonardiana)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만 페이지가 넘는 노트에 그의 무한한 자유로운 상상을 담았다. 시간과 함께 아카이브가 축적되고 있는 그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참고서적과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어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빈치로 향하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으며 차편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한적한 이 시골 마을로 들어서면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 예술가를 기억하려는 열망이 마을 전체를 뮤지엄으로 만들었고 지금 이곳 사람들을 활력과 긍지로 살아가게 한다.
올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후 50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 생을 마감한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천재를 기리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는 느낄 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과 생각의 시원, 빈치에서는 영원히 어린 레오나르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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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큐레이터/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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