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전진영 수습기자] “옛날에 말이야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온 후배가 있는데 지금 잘나가잖아.”
신입사원 이수정(24·가명)씨는 지난 13일 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날 부서 회식 자리에서 부서장이 끊임없이 ‘밸런타인데이’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부장이 과거 여직원의 사례를 언급하며 ‘수정씨는 만들어 오지 말고 이탈리아 초콜릿 사 오면 된다’고 수차례 말했다”며 “본인은 농담이라고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매우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연인, 가까운 지인들과 초콜릿 등을 주고받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따뜻한 마음이 오가야 하는 날이지만 일부 직장인들에게는 맞이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특히, 여성 직원이 의무적으로 남성 직장 상사에게 초콜릿을 선물해야 하는 사내 분위기는 ‘직장 내 갑질’로 작용하고 있다.
이씨는 밤새 고민 끝에 결국 14일 이른 아침 초콜릿을 구매해 부서 내 직원들에게 돌렸다. 이씨는 “억지로 준비해갔는데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옆 부서의 여직원도 초콜릿을 돌려 안 챙겼다간 비교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날 수입 초콜릿을 구매하는데 12만원의 비용을 들였다.
초콜릿을 선물하지 않아 직장 상사로부터 핀잔을 듣는 직장인도 다수다. 직장인 지모(28)씨는 입사 후 2년간 밸런타인데이 때마다 직장 동료들에게 초콜릿을 돌렸다. 지씨는 이번 밸런타인데이는 들어가는 비용과 수고로움에 챙기지 않았고, 직장 상사로부터 ‘올해는 왜 챙겨주지 않나’는 핀잔을 들었다. 지씨는 “2년 동안 챙겼더니 초콜릿 받는 것을 당연한 거로 여겼다”며 “남성이 여성을 챙겨주는 화이트데이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데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서양에서 밸런타인데이는 남녀 관계없이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다. 반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로 나눠 남녀가 선물하는 날을 구분한다. 화이트데이는 1980년 일본의 사탕 제조업자가 밸런타인데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일본의 화이트데이가 우리나라에 전파되며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선물을 해야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 과정에서 연차가 낮은 사회초년생이 직장 상사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씨는 "밸런타인데이 등 각종 '데이'에 연차가 낮은 직원이 눈치를 보게만드는 사내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인데 특히 여성이 눈치를 더 보게된다"라며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전진영 수습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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