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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가 인프라 전략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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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방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보면 부정적 평가가 더 우세했던 것 같다. 예타 면제 자체에 대한 비난도 있었고 내년 총선을 겨냥해 광역자치단체마다 한 건씩 나눠 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정평가는 43.2%였고 긍정평가는 40.4%였다. 긍정과 부정이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예타 면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서 벗어나 국가 인프라 전략이란 좀 더 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자.


해마다 정부는 SOC 예산안과 함께 향후 5년간에 걸친 '국가재정운용계획'도 국회에 제출한다. 2004년에 처음 국회에 제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축소지향의 인프라 정책'을 공식화했다.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SOC 부문 간 내지 부문 내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상당 수준 확충된 것으로 평가되는 도로나 지방 도로에 대한 투자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명시했다. 이후에는 해마다 SOC 예산에 대해 '완공위주 집중투자'라는 원칙을 천명했다. 신규 사업을 발굴해서 투자하기보다는 기존에 벌여 놓은 사업을 완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한 시기만 제외하고 대체로 지난 15년 간은 '완공위주 집중투자'가 국가 인프라 전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공위주 집중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한 핵심 논리는 '인프라 충분론'이었다. 우리나라의 SOC스톡은 충분하고 국토 면적당 도로 길이와 같은 지표로 국제 비교를 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SOC 예산은 앞으로 축소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4대강 사업의 후유증도 컸다. 토건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에 반대하는 여론도 컸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해마다 SOC 예산을 6.0%씩 줄이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부도 집권 첫해부터 7.5%씩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제일 길다. 인구밀도를 반영한 국토계수당 도로 길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이처럼 어떤 지표로 국제 비교를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SOC스톡이 충분한지 아닌지는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게다가 2009년 이후 10년간 토목투자가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다 보니 노후 인프라 개선이나 투자도 소홀했다. 지역발전을 견인할 신규 인프라 사업의 발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나마 제안된 지방사업은 예타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예타 제도 개선에 대한 지방의 요구도 많았다. 특히 경제성보다 지역균형발전이란 평가항목의 비중을 더 확대해 달라는 목소리가 컸다.

수도권은 신도시 건설을 비롯해 아파트 공급이 급증했지만 광역교통망의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역주민들의 인프라 수요도 급증했다. 최근 들어 국내 경제성장률 둔화, 지역경제 악화 및 건설투자와 일자리 감소가 지속되자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예타 면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았던 것은 정부와 여당이 오랫동안 인프라 투자에 과도하게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던 탓도 크다. 또한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은 여전히 '4대강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과거나 국내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미래와 글로벌을 생각하면서 임시방편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 투자를 해나가야 한다.


만약 해마다 신규사업을 발굴해 예타를 비롯한 절차를 지속적으로 밟아나갔더라면, 예타 대상사업 기준이나 평가방법상의 문제점을 개선했더라면 이번 같은 사례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각국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의 국가 인프라 전략도 축소지향적이어서는 안된다. 노후 인프라와 스마트 인프라에 대한 투자확대는 물론이고 경제성장 및 지역균형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이끌 신규 인프라 사업 발굴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올해 국회에 제출할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부터 '완공위주 집중투자'라는 문구를 삭제했으면 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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