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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부디 제대로 싸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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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을 가던 두 자동차 사이에 접촉 사고가 났다. 양쪽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다투기 시작한다. 한데 이야기가 길어지더니 "너 몇 살이야" "왜 반말이야"로 번진다. 차는 길을 막은 채 세워져 있고, 누구의 잘못인지는 뒷전이다.

#2. 불이 난 상점에서 금품을 빼돌리던 이가 현장에서 경찰에 잡혔다. 이 도둑이 항변한다. "쟤들도 가져갔는데 왜 나만 잡느냐"고. 설사 그렇더라도 자신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른다. 오로지 억울할 뿐이다.
이런 '논점 흐리기' '물귀신 작전'은 우리 정치판에서 도드라진다. 내 주장을 밀어붙이려 인신공격, 막무가내식 논리가 판을 치니 정치적 논란을 지켜보다 보면 헷갈릴 경우도 적지 않다. 마치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이, 사람 사는 곳에는 늘 있었다는 매매춘이나 세상을 만든 건축가가 아니라 그 이전의 혼돈을 만든 정치가라는 어느 조크를 떠올리게 할 지경이다.

최근 벌어진 '일과 후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 허용' 조치를 두고 벌어진 논란이 그 한 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지난 17일 이를 두고 "당나라 군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자 당장 정의당 측에서 "군 면제인 하 의원 본인은" 운운하며 날을 세웠다. 좋다. 정파 간에 논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의 비용, 효과를 두고 논리 싸움을 벌여야 마땅하다. 이 경우 병역 의무 이행 여부를 들먹이는 것은 '논점 흐리기'의 전형적 예에 불과하다.

결국 "병역 기피자가 아니라 학생운동으로 군 입대가 금지된 것"이라고 해명하던 하태경 의원이 이틀 만에 "내가 꼰대였다"고 사과하는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휴대전화 허용 정책을 둘러싼 건강한 토론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지다. 실체적 진실 여부야 알 수 없다. 문화재 지키기, 목포 살리기란 손 의원 본인의 말대로라면 정말 본인은 복장이 터질 일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돌아가는 사태를 보면 막싸움도 이런 막싸움이 없다.

손 의원은 지난 17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함께 의원직과 전 재산을 걸겠느냐"고 물었다. 나 원대대표가 "손 의원이 김정숙 여사와 여고 동창"임을 들어 연관성을 암시하며 '초권력형 비리'라고 몰아붙인 뒤끝이었다. 지난 21일엔 한걸음 더 나아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을 두고 '배신의 아이콘'이라며 다음 총선에서 박 의원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이 역시 손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박 의원의 발언에 대한 날선 반응이었다. 처음 보도한 언론을 고소하겠다는 데서 시작해 한때 같은 당이었던 금태섭 의원에게는 사과를 요구하기까지 이르렀다.

이 사태의 본질은 '투기 의혹'과 '이해의 충돌'이다. 나 원내대표가 재산을 걸지, 박 의원이 함께 수사를 받을지는 손 의원의 의혹을 입증 혹은 부인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도대체 목포에 유관 부동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먼저 밝히고, 사전에 '정보'를 알았는지, 인사며 작품 구입을 둘러싼 압력설의 진위는 어떤 건지를 두고 다퉈야 하지 않을까.

'전선'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같이 죽어보자'는 태도는 장삼이사들의 이전투구 양상이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이성적 태도가 아니다. 이건 마치 권투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오른 상대에게 골프채를 들고 휘두르는 격이다. 다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만들어진 진실(헥터 맥도널드 지음ㆍ흐름출판)'에 '허수아비 논증'이란 게 나온다. 상대방의 주장을 엉뚱하게 전달하거나 자기가 반박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놓고 이를 쓰러뜨리는 수법이다. 정치가들이 많이 쓴단다. 그들이야 이기는 게 목표겠지만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진실이다. 부디 제대로들 싸우시라.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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