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야기 법관 인사 등
서명 있는 증거 인정했지만
부당한 지시 아니다 주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직접 지시를 내린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지시만으론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3월 제기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법농단 수사의 시발점이 됐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학술단체 소속 법관들을 사찰했다'는 이탄희 판사의 문제제기로 법원 내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양 전 대법원장 산하 진상조사위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는 결론으로 조사를 마무리지었다.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추가조사로 법원행정처가 블랙리스트 작성은 물론 특정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정황까지 발견되면서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전ㆍ현직 법관이 100여명이 피의자 또는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법관들을 사찰하거나 좌천시키는 등 부당한 인사 조치를 검토ㆍ지시했다는 다수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 2차 조사에서 대부분 혐의에 '기억 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을 알지 못한다'는 답변으로 일관한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블랙리스트 문건에 대해선 적극 부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려는 검찰에 맞서 '지시를 한 사실은 있지만 죄가 되지는 않는다'며 법리 해석을 달리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먼저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역시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직권남용' 범위에 대한 해석은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히면 공무원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줄어, 결과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핵심은 직권남용이 아니라 '권리행사방해'"라면서 "공무원의 행위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했다면, 외형상 직권이 존재한다고 믿어지거나 직권의 존재를 사칭한 경우로 봐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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