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캐럴/유희경
먼 도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곳은 너무 더웠어 얼굴이 다 타 버렸잖아 역사(驛舍)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끊기며 조금씩 늘어지는 그 음악의 주인은 광장에 있었다 월세가 없어요 곧 쫓겨나겠지요 도와주십시오 써 붙여 놓은 그의 악기 가방에 얼마나 들었나 훔쳐보게 되는 것도 사람의 일이겠지만 아랑곳없이 그는 건강하세요 건강하게 장수하세요 하고 목청껏 축복하느라 연주를 그쳤다가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내가 길을 건너려던 참에 들은 곡은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너무 환한 나머지 눈도 선물 상자도 없는 그때가 나는 빈손 같아 슬퍼졌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연인들은 명동성당을 찾을 것이고, 젊은 아버지는 산타 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을 고르느라 분주한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월세가 없어 길거리를 헤맬 것이고, 누군가는 연탄 한 장을 구하지 못해 굽은 등을 더 웅크릴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유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성모상 앞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이들에게 얼굴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사람의 가난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지 않은가. "먼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든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든 크리스마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따뜻했으면 좋겠다. 부디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채상우 시인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