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업계를 대표하는 회장이 취임하면 금융감독원 팀장에게 제일 먼저 인사를 간다. 국장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금융권 한 협회 관계자의 푸념이다.


이 관계자는 "업계를 대표하는 회장이 이 정도인데, 실무진은 오죽하겠느냐"며 "인사 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아랫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첫 민간 출신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수석부원장, 부원장, 부원장보 등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다.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유광열 수석부원장과 명지대학교 교수 출신인 원승연 부원장을 임명했다. 금감원을 둘러싼 내부 비리를 의식해 서열 2, 3위를 외부 출신으로 수혈한 것이다.


여기까지였다. 기존 부원장보들이 물러난 빈자리는 국장들이 채웠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메꾼 셈이다. 금감원은 이번 임원 인사에 대해 "금융 전문성과 리더십, 혁신 마인드를 겸비한 전문가들을 새로 임원으로 임명했다"며 "이번 인사를 계기로 채용비리 등으로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를 일신하고 당면한 대내외 혁신 과제를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의 평가는 다르다. 금감원이 내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존 '원장-수석부원장-부원장-부원장보-국장'으로 이어지는 경영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도덕적 해이(모럴헤저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영진 구조를 과감하게 축소하는 대신 실무진을 확대해야만 일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감원 1∼6급 전 직원(1970명) 중 관리직인 1∼3급이 45.2%나 된다. 5명 중 1명이 보직 간부인 것이다. 1, 2급 직원 중 63명은 무보직 상태로 하위직급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1억3000만∼1억4000만원의 연봉을 받아갔다.


금감원의 수입예산 가운데 은행ㆍ보험사ㆍ증권사 등에 배분ㆍ징수하는 감독분담금은 지난해 2489억원에서 올해 2921억원으로 무려 17.3% 올랐다고 한다. 예산은 많고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 비중은 임원 대비 적다보니 방만경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금감원이 독립성 명분만을 내세운 채 외부 견제를 불편해 한다는 데 있다. 최근 금감원 간부들은 언론이나 업계 관계자를 만나면 "다시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은 시대에 역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D

금감원은 단순 민간 기구가 아니다. 전 금융권을 감독하는 만큼 관료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 보니 '금융 검찰'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원장 임명도 사실상 정부가 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적폐청산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금감원, 더 이상 주장을 할 때가 아니다. 시퍼런 메스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