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혼잣말, 그 다음/함성호
혼잣말 그 다음―이 도시는
거대한 레코드판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쥐똥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말하듯 노래하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혼잣말로 들린 것도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잣말이 사라진 자리를 단풍나무와 사철나무가
실망으로 우거져 내리어 메운 것도 그 다음이었다
새벽의 골목에서는 혼잣말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포위해 오며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혼잣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 같기도 했다
이 도시에 누가 혼잣말을 기록하고 다녔는지
혼잣말은 지하철로에도, 계단에도, 복도에도
유리문의 경첩에서도 투명하게 울려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홀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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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키는
내가 미친 것은
혼잣말,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는 약간 심한 편이다. 길을 가다가 신호등에게 '안녕'이라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금연'이라는 팻말을 보곤 '싫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을비 오고 난 다음 날 아파트 화단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구절초들에게 '너희 정말 하얗구나'라고 말을 건 적도 있는데 희한하게도 꽃들이 '그래 그래' 그러면서 고개들을 끄덕였더랬다. 좋게 말하자면 물활론적 사고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가끔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좋다. 나는 사실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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