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투자 결정 전 서류 심사를 하고 현장 실사를 나가기도 하지만, 실사권은 있어도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일일이 컨테이너 안을 다 뜯어볼 수도 없고…. 눈 뜨고 코 베인 경우죠."

은행,증권업계가 불량 웨이퍼로 허위 수출을 일으켜 4000억원대의 수출금융 사기극을 펼친 메이플세미컨덕터에 눈 뜨고 코가 베였다. 국내 대형 은행들은 메이플세미컨덕터의 허위 매출채권을 담보로 잡아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대출해줬고 주요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닥 상장이 목표라던 메이플세미컨덕터에 미리 투자해 기업공개(IPO)와 함께 엑시트(투자금회수)를 할 목적으로 수백억원을 넣었다.


작정하고 친 사기 앞에는 관계자들의 현장 실사도, 회계법인의 감사도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4000억원대 수출금융 사기극에 날벼락을 맞은 은행·증권업계는 이번 일을 사전에 막기 어려웠던 일로 치부하고 있다. 대출 및 투자를 단행할 때는 대부분 기업의 회계장부와 보증기관의 보증 등을 토대로 서류 심사를 하고, 현장 확인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법적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실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0.5달러짜리 불량 웨이퍼를 250~800달러로 부풀려 수출한 것으로 꾸미고 실적을 조작하더라도 은행, 증권업계가 대출과 투자를 집행할 때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통로가 제한적이라는 말이다.


수출금융 사기를 막기 위해 일부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비정상거래를 검출·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기도 했지만 아직 도입 초기단계다. IBK기업은행 정도가 제2의 모뉴엘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말에서야 은행권 최초로 '외환특이거래 점검시스템(FAIS)'을 구축해 시행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스템을 만든다고 해서 비정상거래를 100% 걸러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게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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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증권업계가 개별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금융당국 차원의 리스크 관리 지원 또는 시스템 개발이 있어야 '사후약방문'이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좀 더 꼼꼼하고 책임 있는 회계감사가 있었다면 메이플세미컨덕터의 분식회계를 알아챌 수 있었다고 아쉬워한다. 외부감사인이 기업에 매수돼 회계감사를 하는 일을 근절하고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정감사제 확대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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