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밥을 주세요/김지녀
이 질문에 밥을 주세요 페달이 멈추었어요 새가 울지 않았어요 오후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5시 11분엔 밥이 필요해요 천둥이 치는 날엔 다음을 기다려요 소리의 다음, 너의 다음, 하늘의 다음, 다음의 다음,을 기다려요 기다리며 나는 번쩍거려요 우산에 밥을 주세요 보리 현미 콩 수수가 섞이지 않은 하얀 밥을 주세요 용마랜드의 회전목마에 밥을 주어야 해요 서로의 멱살을 잡는 사람들에게 갓 태어난 아기에게 리어카를 몰고 도로를 횡단하는 저 할아버지에게 추억을 주세요 창백한 우리의 영혼에 호호 따뜻한 입김이 불어오게 해 주세요 침묵을 깨워 주세요 도마뱀 꼬리처럼 잘려도 다시 돋는 우리의 수다를 잠재워 주세요 밥은 다 할 수 있어요 주먹처럼 만들어 던져 주세요 높은 담장과 담장 사이로 던져 주세요 따끈따끈 하얀 밥풀이 흩날리는 세상을 다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밥을 주세요 어둡고 추운 서로의 입속에 한 숟가락의 불이 되도록 페달을 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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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멱살을 잡는 사람들에게 갓 태어난 아기에게 리어카를 몰고 도로를 횡단하는 저 할아버지에게" "어둡고 추운 서로의 입속에 한 숟가락의 불이 되도록", 그래 "호호 따뜻한 입김"으로 가득한 밥 한 그릇을 건네는 일보다 더 거룩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밥은 다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밥을 나누기는커녕 빼앗고 독식한다. 도대체 왜 그러한가? 지금까지 이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고 대답들이 있었다. 그러나 저 당연한 일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만 당위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질문을 해야 한다. 자꾸 해야 한다. 질문에 섣부른 답이 아니라 거듭거듭 "밥을 주"어야 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 비참한 세계를 스스로 구하려 하지 않는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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