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적합업종, '권고' 아닌 '강제' 돼야"
대기업이 협상 테이블 앉아야 진행…합의까지 의사결정 장기화 빈번
존속기간 최대 6년…업종 따라 투자 성과 경쟁력 이어지기엔 짧은 시간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올해 중 법제화 시급…"중기부장관 강력 의지 필요"
[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최악은 면했다."
2011년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된 골판지·상자 제조업계의 한줄 평이다. 그나마 적합업종이었기 때문에 도태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 6년간 이 업계에서 신규 대기업은 시장 진입자제를, 기존 대기업은 적대적 인수합병(M&A)과 신설을 통한 시장 확장 자제를 권고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권고기간 역시 오는 9월 말이면 만료된다. 김진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전무는 "적합업종 선정마저 없었다면 영세업체들은 이미 대기업에 모든 시장을 넘기고 도태됐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난 6년 동안에도 대기업들은 소규모 사업장을 인수해 우회 진출을 하는 등 편법을 써왔으므로, 만료 이후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현행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한계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1일 서울시와 국회의원(이학영·이훈·손금주) 공동 주최로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성과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는 약속된 시간을 30분 이상 넘어가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2011년 시작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에게 적합한 업종을 지정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자단체가 동반성장위원회에 업종 지정을 신청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민간 합의를 거쳐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지정기한은 3년으로 재합의하면 3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이날 지정토론에 나선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총 6년 동안만 보호가 가능하고 기간이 끝난 이후의 대책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현재 적합업종 지정 73개 품목 중 47개 품목이 올해 9월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한다. 위 연구위원은 "재지정기간 만료 후, 특히 생계형 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의 경우 기간 만료 이후에도 보호의 필요성이 있으므로 일정한 요건 하에 기간 연장 등을 포함한 잠정 조치내지 추가 보호조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위민의 김남근 변호사는 "적합업종 지정이 되면 기간 내 경쟁력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데 중앙정부는 지정만 해두고 사실상 방치한 경우가 많았다"며 "지정 후 해당 분야가 경쟁력 높일 수 있게끔 하는 부분도 과제"라고 말했다.
적합업종 지정 내용과 범위 등 세부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대기업의 편법·우회진출을 막기 위해 적합업종의 품목과 업종에 대한 세부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설정하고 합의를 통한 지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우회나 편법 진출의 금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 부분에 대한 업계의 우려 역시 크다. 조상현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사업관리부 부장은 "떡국떡 및 떡볶이떡의 적합업종 이행 권고기간은 다음 달까지"라며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주 거래처가 식자재 대리점과 단체급식 위주로, 합의 연장이 안될 경우 대기업이 자본력과 자체유통망을 무기로 중소기업 사업영역까지 공격적으로 진출해 중소기업들의 경영위축과 도산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중소기업자 단체가 있어야 적합업종을 신청할 수 있는 등 신청 자격이 폐쇄적이라는 점, 자율 합의와 권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실효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위 연구위원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무회의에 들어가 현 상황을 설명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특별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중소기업청장이 적합업종을 지정·고시하게 하고, 대기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인수·개시 또는 확장할 수 없도록 했으며 위반시 중기청장이 이행강제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홍정호 중소기업중앙회 성장지원부 부장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과 독과점 등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실질적인 공정경쟁을 이뤄내기 위해 제도적 보완장치로 적합업종을 법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법제화 되더라도 실제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통상 6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법 실행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적합업종 권고기간 만료 품목에 대한 일괄 유예 등 사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익철 한국재생유지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사료용 유지 업계는 과잉설비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준재벌급인 농협 산하 부경양돈조합이 렌더링산업 진출을 추진 중에 있어 비상사태"라며 "소규모 산업 및 생계형업종에 대한 법제화가 매우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료용 유지는 지난해 5월 적합업종 지정을 받았다. 사료용 유지는 축산물에서 배출되는 폐지방·뼈를 열처리 재활용(렌더링)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배합 사료에 중요한 원료로 이용되고 있다.
적합업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확대와 함께 위반 사항에 대한 공시 강화 등도 건의됐다. 현재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배포하는 보도자료 정도에서만 위반사항 확인이 가능하나, 향후 위반 사항에 대해 중소기업단체에 즉시 피드백을 실시하고 홈페이지 게시를 의무화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