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심장질환 내과전문의 플뤼게
몸·정신의 '아픔' 분석 에세이
심장질환도 우울증과 연관


'아픔에 대하여' 표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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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때 대중들 사이에 인기를 얻으며 각종 패러디를 낳은 이 대사는 조선여형사를 주제로 한 MBC드라마(2003년 방영) '다모'에서 남자 주인공 황보윤(이서진)이 남장 여 형사 채옥(하지원)에게 한 말이다. 상대의 물리적 상처에 심장이 반응하는 듯 반사적으로 읊조린 이 고백은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렇듯 '아픔'을 둘러싸고 나와 내 몸, 또는 나-타자 간에 일어나는 공감각적 전이현상은 일상에서 종종 발견하거나 겪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의학과 철학, 나아가 학문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인간 존재의 실존적 아픔을 헤아린 사람이 있다. 독일의 심장질환 분야 내과 전문의 헤르베르트 플뤼게(1906~1972)가 그 주인공이다.

플뤼게의 철학 에세이 '아픔에 대하여: 몸과 병듦에 대한 성찰'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총 3부 열한 장에 걸쳐 의학과 철학을 아우르며 '병듦'이라는 인간의 조건과 아픔의 실존적 의미를 저자의 임상사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플뤼게는 인간이 느끼는 아픔이 몸이 느끼는 통증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감당하는 실존의 아픔까지 동반한다고 보았다. 제목에도 보이는 '아픔'이라는 단어는 몸과 정신의 통증과 고통을 포괄하는 주제어인 셈이다.


저자의 비판의식은 근대의학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체의 질병과 아픔을 치료하는 의학은 자연과학의 연구성과가 집약된 근대과학으로서 높은 위상을 지닌다. 그런데 서양에서 발전한 근대 자연과학은 의학과 철학을 분리시키고 인간의 질병 전모를 설명이 가능하고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체계로 확립하고자 했다. 이렇게 탄생한 의학은 자연과학의 분과학문이 되면서 환자는 병과 치유행위로부터 점차 소외됐다. 그 결과 의료는 인간적 의미를 상실한 채 도구적 이성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전쟁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환자가 폭증하면서 '의학적 인간학(medical anthropology)' 또는 '의철학(philosophy of medicine)'이 부상했다. 플뤼게 역시 전쟁을 겪으며 많은 환자들을 상대했는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겪은 임상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의학적 인간학에 몰두하게 했다. "누구나 병들고 아프지만 몸과 병듦의 현상, 아픔의 인간학적 의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는 깨달음이 연구의 시작이었다.


그는 전후 독일 사회에서 자살을 시도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내면의 황폐함과 그 원인을 추적했다. 그는 자살이 개인의 심리적 조건으로 촉발되기보다는 공허함 내지는 실존적 지루함 때문에 일어나는 보편적이고 인간학적 병듦의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또 심근경색을 비롯한 다양한 심장병 환자들을 치료한 그는 심장 질환이 정신적으로 우울증과 연관돼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몸이 그 거칠 것 없는 자유를 잃게 될 때, 현재 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때, 우리 인간은 우울증에 가까워진다. 둔중해진 몸을 염려하며 운명이라고 체념해 세계로부터 등을 지는 우울증의 태도는 달리 보면 행위에, 계획에, 일중독에 빠져 몸을 돌보지 않는 잘못이 그 원인이다." 일련의 연구 끝에 저자는 병듦의 현상을 '나'와 '세계', 그리고 이 둘을 중개하는 '몸'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고 그가 거쳐 온 지적 탐험을 공유한다.


1부 '허무와 무한'에서는 지루함과 자살, 희망에 대해 말한다. 2부 '몸과 병듦 그리고 행복과 불행'에서는 몸과 병듦이 내면과 연관됨, 환자의 침묵과 몸이 느끼는 이상증상 및 행복과 불행의 감각 등을 고찰한다. 3부 '아픔에 대하여' 편에서는 우울증과 미래를 기약한다는 것의 의미, 인간학으로서의 병듦,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룬다. 이 중 불치병을 통해 진정한 희망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자연의 선(先)형식'이라는 초경험적 표현을 썼다.


독자는 의학과 철학의 융합,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인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온 저자의 노력에서 본체와 마음의 경계를 깨달으라는 '일체유심조(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뜻의 불교용어)'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몸의 주체이지만, 몸은 나로부터 자율적이다. 나는 몸으로 세계를 체험하지만, 몸은 동시에 나의 세계이다. 나는 몸과 세계 어디쯤을 떠돌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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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뤼게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1932년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193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의 신경과에서 빅토어 폰 바이츠제커의 조교로 지냈고, 1938년 내과 의학과 신경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943년 다름슈타트 시립병원, 1952년부터 1969년까지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에서 원장으로 일했다.


☞아픔에 대하여: 헤르베르트 플뤼게 지음/김희상 옮김/돌베개/1만6000원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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