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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크리스토포로스

최종수정 2016.12.16 11:00 기사입력 2016.12.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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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시리아에서 태어난 이교도(異敎徒)라고 하고 가나안에서 태어났다고도, 아라비아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그는 거인이었고 원래 이름은 레프로부스였다. 기독교로 개종하여 안티오키아(현재의 안타키아)의 주교 바빌라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전하기로는 리키아 지방에서 선교하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사모스라는 마을에서 순교하였다. 가톨릭 14성인(聖人)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여행자ㆍ산악인ㆍ운동선수ㆍ운전수ㆍ짐꾼의 수호성인이다.

 전설에 의하면 레프로부스는 사람들을 어깨에 태워 강을 건네 주는 일로 호구하였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을 섬기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한 왕을 섬겼으나 그 왕은 악마를 두려워했다. 악마를 찾아가니 십자가를 피했다. 그래서 레프로부스는 악마보다 큰 권능을 지닌 누군가가 있음을 알았다. 어느 날 한 은수자(隱修者)가 레프로부스에게 예수의 권능에 대해 설교했다. 감화된 레프로부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라는 은수자의 가르침에 따라 강가에 머물며 가난한 여행자들을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어린이가 그에게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했다. 레프로부스는 어린이를 어깨에 메고 강에 들어갔다. 그런데 강을 건너는 동안 어린이가 점점 무거워졌다. 레프로부스는 '세계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강 반대편 기슭으로 지팡이를 뻗어 겨우 버텨냈다. 그때 어린이가 "너는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나는 네가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이다"라며 자신을 드러냈다. 그 순간 뭍에 닿은 지팡이에서 푸른 잎이 돋고 땅에 뿌리를 내려 종려나무가 되었다.

 이 일로 레프로부스는 '크리스토포로스'(Christophoros)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어깨에 지고 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진다는 신체행위가 아니라 영성적으로 '그리스도를 가슴에 간직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쉬우리라. 그러니 어깨는 가슴, 곧 '심장'과 영혼의 피를 공유한다. 우리는 무거운 책임을 느낄 때 '어깨가 무겁다'고 하고 그 원인이 우리의 피붙이일 때 가슴 한가운데가 벅차고 먹먹해져옴을 감지한다.

 저마다 자신만의 우주를 지고 다닌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무신론자들은 묻는다. "종말? 내세? 그런 게 어디 있어?" 내세의 유무에 대해, 나도 말 못하겠다. 죽음을 앞둔 시인 구상 선생은 "겨울처럼 닥쳐올 내세가 두렵고 당황스럽다"고 고백하였다. 성녀 테레사 수녀조차 고백하기를 "외로우며 신과 분리돼 있다고 느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 종말이여. 탄생의 그 순간부터 저마다의 종말을 짊어졌음을, 나도 당신도 알고 있느니.
 서기 450년 에울라리우스 주교는 칼케도니아(오늘날의 칼케돈)에 성 크리스토포로스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웠다. 당신이 유럽을 여행하는 길에 들어간 성당에서 어린아이를 어깨에 짊어진 사나이를 그린 성화를 보았다면 그가 곧 크리스토포로스, 당신이다. 당신의 어깨에 당신의 고단한 하루하루와 당신의 가족과 이웃, 당신의 온 생애와 당신의 우주가 깃들였다. 그러니 당신의 두 어깨는 고귀하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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