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정권' 검토하는 정부…삼성전자 파업 막을 '카드' 될까[Why&Next]
삼성전자 21일 총파업 예고
정부 조정권 발동 여부 부상
파업시 수출·투자·세수 타격
국민 피해는 별개, 신중론도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중대한 정책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긴급조정권은 헌법상 노동3권을 제한하는 초강수인 만큼 단순한 생산 차질 우려만으로는 발동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의 중대성을 고려할 경우, 손실 최소화를 위한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14일 관계 부처와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노사 협상 결렬 이후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 충족 여부를 검토 중이다. 긴급조정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을 행정 명령으로 중지하는 극단적 수단이다. 노조법 제76조는 '쟁의행위의 규모가 크거나 성질이 특별한 사업에서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위험이 있을 때'로 발동 요건을 제한하고 있다. 과거 발동 사례는 1969년 대한조선공사, 1993년 현대차, 2005년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등 단 네 차례뿐이다.
수출·반도체 공급망 충격 불가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삼성전자의 압도적인 경제 규모를 꼽는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333조6059억원, 영업이익은 43조6011억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13% 안팎의 규모다. 국내 단일 기업 가운데 사실상 최대 수준이다.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과 투자, 세수 전반에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같은 기간 내수 매출은 21조6000억원 수준인 반면 수출 매출은 238조430억원에 달한다. 전체 매출의 약 91.7%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조업 중단이 단순한 '국내 산업 타격'에 그치지 않고 무역수지와 외화 유동성 등 국가 수출 경제 전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5년 긴급조정이 발동된 아시아나항공 파업 당시 정부가 근거로든 피해는 25일 파업으로 총 3233억원의 직간접 피해와 결항률 31.8%였다.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 333조원을 단순 분할하면 일 매출은 약 9140억원 규모다. 규모적 측면에서 긴급조정 발동을 뒷받침하기 충분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갈등은 일반적 임금 교섭을 넘어 국가 핵심 산업과 공급망 안정성에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 역시 긴급조정권 발동 논거로 거론된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생산라인은 24시간 3교대 체제로 운영된다. 반도체 공정은 한 번 가동이 멈추면 재가동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는 대표적 장치산업이다. 웨이퍼 공정 특성상 중간에 라인이 멈출 경우 불량 증가와 수율 저하 가능성도 커진다. 업계에서는 수일 단위 생산 차질만으로도 손실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고 본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전무는 "최소 가동 중단 시 복구하는 데만 짧아도 7일, 파업 규모에 따라 한 달 이상 걸려 복구비용만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도 파급력이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로는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다.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스마트폰과 서버,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 전반으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메모리 공급망 불안이 국가 경쟁력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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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안전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2026.4.16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기업 규모만으로 발동 어려워" 신중론도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긴급조정권은 헌법상 단체행동권 제한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규모의 크기가 곧 긴급조정의 정당성으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016년 현대자동차 파업에서 송영섭 변호사의 법률 분석이 지적했듯, 발동 요건에서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한 것이란 공익사업에 준할 정도로 공중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기업의 매출 규모와 국민 일상생활의 위태로움은 별개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현저한 위험의 현실화' 여부다. 정부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DS 부문 가동이 중단될 경우 아시아나항공 결항처럼 국민이 직접적·즉각적으로 체감하는 불편을 초래하는지는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재고 자산은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한 강력한 반론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재고자산 총계는 지난해 말 기준 평가 전 금액 58조4785억원, 평가충당금 차감 후 장부금액은 52조6368억원에 달한다. 단기 파업이 발생하더라도 상당 기간 기존 재고를 활용한 공급 대응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업계에서는 메모리 업황 부진 시기를 거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재고 완충 능력이 확보됐다는 평가다.
총파업에 따른 광범위한 협력사 피해 규모도 검토 요인이다. 수천 개의 국내외 협력사는 삼성전자의 가동 여부에 직접 연동된 매출 구조를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연구개발(R&D)비는 37조7548억원으로 매출 대비 11.3%다. 삼성전자의 생산 중단은 DS 부문의 원재료 주요 매입처로인 솔브레인 등 주요 협력사의 즉각적인 매출 중단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 또한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할 위험이 현존하는가' 측면에서 실제 파업 이후 피해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해외 생산기지 역시 변수다. 삼성전자는 베트남과 인도, 브라질 등지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스마트폰과 가전 부문은 해외 생산 비중이 상당히 높다. 국내 사업장 일부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글로벌 생산망 조정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노사가 자율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적 개입이 이뤄질 경우 노사 환경을 더 왜곡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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