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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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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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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가 정상이라면 이런 것들은 필연적이다. 약자를 보면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깊이 뉘우치며, 사회 정의를 추구하려는 것. 노인의 짐을 나눌 줄 알고,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고생하는 동료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건네는 센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뇌가 '정상'은 아닌 바, 측은지심은커녕 적반하장에 유체이탈이 날뛰는 '비정상'도 공존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고로, 뇌는 미스터리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그런 미스터리를 낭만적으로 해석한 명작이다.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너무도 다른 성격에 이내 지쳐 이별을 택한다. 여기까지는 통속적인 스토리이지만 영화는 급선회한다. 헤어진 두 사람은 아픈 상처를 견디다 못해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뇌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둘은 결국 다시 운명적으로 재회하는데 영화는 묻는다. 나쁜 기억을 지우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리 뇌는 착해질 수 있을까?
뇌과학자인 김대식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뇌는 1011개 신경세포들로 이뤄진 1.5㎏짜리 고깃덩어리로 두개골이라는 컴컴한 '감옥'에 갇혀 있다. 여기서의 '감옥'은 플라톤의 '동굴'과 맞닿는다. 플라톤은 인간을 어두운 동굴에 갇힌 죄인들로 비유했다. 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죄인들은 동굴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비치는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한다. '감옥'에 갇힌 뇌도 마찬가지여서 눈, 코, 귀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사고(思考)한다. 이를 플라톤식으로 재해석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세상을 바로 보고(눈), 주변과 공감하며(코), 타인의 의견을 청취하는(귀) 필요충분 조건이 동반돼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고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왜 상식과 정의로부터 동떨어져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우리는 그녀의 사고(뇌)를 탓하지만 실은 보고 듣고 공감하는 인식(눈ㆍ코ㆍ귀)의 문제를 개탄하게 된다.

그녀는 18년 철권통치를 해온 아버지 밑에서 정치와 사상을 배우며 성장했고, 18년 야인(野人)으로 살 때는 최태민 일가에 둘러싸여 공주처럼 지냈으며, 정치인으로서의 18년 삶은 또다시 최순실에 기대 왕비처럼 살아왔다. 그녀는 서민의 세상을 바라본 적이 없으며, 대중과 호흡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세상과 진실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눈과 귀를 닫아버린 동굴의 삶. 그 결과가 유체이탈식 사고요, 자기최면식 발언인 것이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속속 커밍아웃하고 있다. 이문열은 촛불 시위에 대해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다'는 3자식 화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비겁함은 제쳐놓더라도, 행간의 왜곡과 비약과 초조함은 보기 민망하다. 또한 친박들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4800만명이 있다"며 촛불시위를 폄훼하지만 '4% 지지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저들은 대체 어느 감옥, 어떤 동굴에 갇혀 있는 것일까.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능력도, 개입할 의지도 없다"고 일갈한 것처럼 눈이 멀고 귀가 닫히면 뇌마저 타락하고 만다. 왜곡되고 편협하고 공포스러운 '뇌'만 존재하는 좀비. 우리, 그런 괴물은 되지 말자.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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