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조카와 말 없는 고모의 이야기…고령화 사회, 고독사 이슈 등 다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딩동, 딩동' 벨이 울리고, 조카 '켐프'가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온다. 임종을 앞둔 고모의 편지를 받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30년 만에 고모의 집을 방문했다. 무대 위 중앙에 놓인 침대에 누워있던 '그레이스'는 이 느닷없는 방문에 화들짝 놀란다.
이때부터 이 둘의 끝도 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아니, 대화라고 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말하기다. '켐프'는 시종일간 떠들어대고, '그레이스'는 묵묵히 듣기만 한다. 하지만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고모'는 시간이 지나도 죽을(?) 기미가 없다. 부활절이 지나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도 지나 이렇게 이 둘의 기묘한 동거는 일 년이나 이어진다.
'그레이스' 역을 맡은 정영숙 배우가 오랜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그레이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파악하려면 정영숙 배우의 표정과 몸짓에 주목해야 한다. 정영숙은 "'그레이스'는 혼자 사는 노인이라 말을 잃었다. 그런데다가 뜬금없이 방문객이 와서 더 입을 닫게 됐다. 하지만 내가 고독하지만 '켐프' 역시 아픈 과거사가 있는 더 고독한 인물이란 생각에 참고 지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인극이지만 대사의 95% 이상은 '켐프'에게 쏠려 있다. '친구 제로', '성적취향 제로', '눈치 제로'인 켐프는 실패한 인생이다 못해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가득한 인물이다. 고모가 듣는 앞에서 "고모 장기는 어떻게 할까요?", "화장을 해드려요?"라는 질문을 태연하게 해대는 모습에서 그 성격을 쉽게 누추할 수 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두 주인공이 한층 가까워지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면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하성광은 "아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 고모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탔을 때부터 이미 두 사람의 교감이 시작됐다고 느낀다"라고 했다. 또 이 작품에서는 "애드리브 칠 여력이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공연은 22일부터 12월11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진행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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