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방학이 시작되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초등학교 6학년인 딸내미 담임 선생님의 군 입대였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모아 두고 올 여름에 군대에 다시 가게 됐다고 선포한 것인데 입대일이 여름 방학식 즈음이라고 못 박았던 것이다. 선생님을 잘 따랐던 아이는 두어 달 전 이 얘기를 거내면서 벌써 이별이 떠오르는지 눈망울이 커지고 벌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집안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음은 당연하다. 그래 쓸 데 없어진 기자정신을 이때라도 발휘해보자. 팩트 확인이 필요해. "선생님, 군필 아니셨나?" "응? 군필?" "군대 갔다 오신 거 아니냐고?" "군대 이미 갔다 오셨는데 이번에 재입대 하신대." "머 '진짜 사나이' 일반인 편 같은 프로그램 만드는 거 아냐?" "아니 진짜 군대 다시 가신대. 장교로."
아이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옆에서 거든다. "그거 참 이상하네. 사모님이 지금 둘째까지 임신하셨는데." "그러면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데. 아니 선생님이 싸이도 아니고 군대를 두번 씩이나 간다고?"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로 술자리를 파하면서도 꿈자리에서 군대 얘기만 나와도 악몽이라고 하는 게 보통의 남자들 아니던가. 혹시나 싶어 장교 출신인 회사 선배에게 재입대 가능성을 물었지만 그 선배도 그런 제도는 금시초문이란다. 살기가 팍팍해졌다고는 하지만 선생님들까지 영향을 받나. 교원 연금보다 군인 연금이 혜택이 더 큰가. 요즘 얘들이 얼마나 유난스러웠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이 모두 선망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박차려는 걸까. 하기야 세상 일은 모르는 것 천지다. 별의별 상상을 해보아도 뚜렷한 답도 없고 해서 선생님의 재입대 건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한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선생님 재입대 미스터리가 최근에야 풀렸다. 지난 주말 저녁 자리에서 불현듯 생각나 선생님 소식을 묻자 아이와 아내가 배꼽을 잡는다. 알고보니 이 모든 게 선생님과 엄마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었단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어느날 선생님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더니 아이들이 '선생님 군대 가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퍼뜩 이벤트를 꾸민 것이었다. "스승의 날 아이들이 즐거운 이벤트를 해줘서 저도 방학식 때 군복을 입고 나타날까 합니다. 그때까지 기밀을 유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은 자초지종과 함께 비밀 유지를 해달라는 장문의 메시지를 엄마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엄마들과 선생님의 단체 카톡방을 몰래 엿본 한 여학생에게 전모가 발각(?)되면서 선생님의 군 입대 이벤트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기밀을 알게 된 여학생 몇몇을 햄버거까지 사주며 입막음에 나섰지만 이를 빌미로 선생님과 협상을 하려는 통에 군복 이벤트는 방학식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접기로 했단다. 아무튼 담임 선생님의 재입대는 어느새 취소 사건으로 바뀌어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학교가 혁신학교여서 혁신적으로 공부를 안 시킨다고 농을 쳤는데 이런 담임 선생님의 혁신이라면 초딩 때 공부 그까짓 것 좀 덜 하는 게 무슨 대수랴. 비록 재입대 이벤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이들 마음 속엔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가 새록새록 기억에 남지 않을까.
憑堂(빙당ㆍ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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