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 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 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서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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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여하튼 아버지와 아들이란 참 서먹서먹하고 낯선 사이다. 우리 사오십대만 해도 그랬다.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를 왠지 꺼렸고,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이라 안아 주길 괜히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맨숭맨숭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그 짱짱하던 여름 오후 볕이 아무도 몰래 사그라들듯 그렇게 아버지는 문득 늙었고 아들은 자라고 자라 젊었던 아버지보다 이윽고 더 나이가 들었다. 그 무렵부터다. 아버지가 자꾸만 착해진다. 미안해한다. 수줍어한다. 그리고 가끔, 웃는다. 어디 먼 데를 가면 아들 뒤만 따라다닌다. 아이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그 젊고 튼튼하고 힘세고 무심하던 아버지가 부끄러운 듯 아들을 슬그머니 바라본다. 그 얼굴 속에 아들의 어린 얼굴이 들어 있다. 두 얼굴이 참 많이도 닮았다.
채상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