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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문화 프리즘]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말러 연주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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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열리자마자 여러 연주단체에서 객석에다 말러를 쏟아부었다. 지난 1월 16, 17일 서울시향이 최수열의 지휘로 6번 교향곡을, 1월 22일 코리안 심포니가 임헌정의 지휘로 1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1월 28일에는 리카르도 무티가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고 와 1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서울시립교향악단(시향)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1번 교향곡을 연주한다. 말러, 말러, 또 말러…. 우리 음악 애호가들은 정말 말러를 사랑하나보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세기말의 예술가다. 교향곡 열 곡 중 네 곡을 19세기에 작곡했다. 에센바흐가 지휘하는 1번 교향곡은 1884년부터 1888년 사이에 작곡되었다고 한다. 말러의 교향곡은 100년이나 지난 뒤 한국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인기곡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휘자 임헌정이 1999년부터 4년 동안 부천 필하모니를 이끌고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성공했다. '성공했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새로운 도전이었고 눈부신 성취로 이어졌다. 정명훈도 시향을 맡아 말러의 교향곡을 자주 연주했다. 인기 있는 지휘자의 연주는 말러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였다. 정명훈과 시향은 지난 2011년 11월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말러의 교향곡 1번을 발매했다.

말러의 교향곡은 다채롭고 아름답다. 음악이 아름답기만 하고 단순하다면 인기가 오래 가지 않는다. 말러의 음악은 1번 교향곡부터 발표되자마자 논란거리가 될 만큼 특별했다. 1889년 11월 2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말러가 지휘한 첫 연주회는 실패로 끝났다. 말러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 놀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예언이 맞았다고 기뻐하지는 않았다.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펜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말러의 새 교향곡은 음악라고 할 수 없다."

말러는 교향곡을 열 곡 작곡했다. 9번이 되었어야 할지 모를 '대지의 노래'를 더하면 열한 곡이다. 모든 작품이 저마다 다른 매력을 품었다. 한 곡 안에서도 악장끼리 경쟁하듯 개성 충만하다. 클래식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느린 악장은 그 선율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주 영화 음악으로 쓰인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의 안단테(느리게) 악장은 '엘비라 마디간', 23번의 아다지오(매우 느리고 평온하게) 악장은 '샤인', 클라리넷 협주곡의 아다지오 악장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온다. 말러의 5번 교향곡 3악장 아다지에토(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등장한다. 이 영화 때문에 말러를 좋아하게 된 음악팬도 많다. 주인공은 말러에게서 캐릭터를 가져왔다고 한다.
영화의 원작은 토마스 만이 쓴 소설이다. 만은 1911년 5월 휴양지에서 말러의 부음을 들은 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해 이듬해 발표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Gustav von Aschenbach)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1971년 3월 이 소설을 영화를 만들어 발표했다. 소설에서 아센바흐는 작가지만 영화에서는 작곡가로 나온다. 아센바흐가 음악적으로 실패해 관객의 야유와 항의를 받는 장면은 말러가 첫 교향곡을 발표했다가 실패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말러의 음악이 토마스 만의 소설이 되고 다시 영화가 되어 말러의 음표가 혈관 속의 피톨처럼 흐르는 이 윤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악팬들을 열광하게 만든 화끈한 한판도 말러를 둘러싸고 터졌다. 1979년 10월 4일과 5일에 레너드 번스타인이 베를린 필하모니커를 지휘해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전유물과도 같은 베를린 필하모니커를 지휘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3년 뒤 음반으로 발매된 이날의 연주는 희대의 명연주로 회자된다. 번스타인은 말러 연주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쳤고 이 자신감은 카라얀에 대한 우월감으로 작용했다. 번스타인이 역사적인 연주를 한 뒤 카라얀도 반격했다. 1982년에 녹음하여 1984년에 그라모폰 상을 수상하는 실황녹음이 명반으로 남았다.

번스타인이 베를린의 포디움을 완벽하게 지배한 1979년의 연주는 카라얀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1979~1980년 9번 교향곡을 아날로그로 녹음한다. 1982년 4월 10일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에서, 같은 해 5월 1일 베를린 필 창립 100주년 기념일에, 8월 27일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잇달아 9번 교향곡을 연주하였다. 명반으로 남은 마지막 연주는 1982년 9월 30일 베를린 페스티벌 때 실황녹음했다. 엄청난 거리를 도움닫기해 번스타인에 필적하는 연주를 한 것이다. 번스타인과 카라얀이 연주한 4악장 아다지오는 말러 9번의 진액을 모두 모은 듯한 연주다.

번스타인은 아다지오 악장의 49마디째 '몰토 아다지오(아주 느리게)'를 지날 때 자신도 모르게 발을 구르며 탄성을 지른다. 번스타인의 팬이라면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소절이다. 그런데 카라얀도 1982년 공연에서 신이 내린 듯('번스타인빠'들은 카라얀이 번스타인을 흉내냈다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 연주 중에 탄성을 내지른다. 아다지오 악장의 후반부, 126마디째 몰토 아다지오 부분이다. 두 음반은 지휘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고성능 오디오를 보유한 매니아들을 기쁘게 한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연주가 끝났을 때 관객들은 한동안 박수조차 치지 못했다고 한다.

시향은 7일 밤에 예술의전당에서 말러의 1번을 연주했다. 원래 8일에만 공연하기로 했으나 말러의 탄생일(7월 7일)에 맞춰 하루 더 연주한 것이다. 에센바흐는 지난 1월 9일에도 시향의 지휘대에 올라 시즌 첫 공연을 지휘했다. 사임한 예술감독 정명훈 대신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해 큰 감동을 주었다. 에센바흐(Eschenbach)라는 이름은 토마스 만의 소설 속 주인공 아센바흐와 머리글자만 다르다. 그래서 그의 말러 연주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에센바흐의 팬이라면 그가 남긴 모차르트 소나타 K.331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새 피아노 음반을 본 지는 오래 되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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