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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삼성SDI, 때 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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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두 명의 아마추어 골퍼가 있다. 파(par) 72인 코스를 4번 도는 지난 대회에서 두 골퍼는 모두 합계 12오버파를 기록했다. A는 첫날 90타를 쳤지만 이튿날부터 마지막날까지 3일 연속 70타를 기록했다. B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4일 내내 75타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두 선수 중 누구에게 베팅할 것인가.

두 개의 기업이 있다. 두 회사의 최근 4년간 순이익 합계는 100억원으로 같다. A회사는 2012년 50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00억원씩 이익을 냈다. B회사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2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두 회사 중 어느 기업에 투자할 것인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A와 A기업에 베팅할 것이다. 75타를 꾸준히 치는 B보다는 2언더(기준 타수보다 2타 적은 스코어)를 3번이나 친 A가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2개의 기업 중에서는 손익 분기점을 간신히 넘는 이익을 내는 B기업 보다는 4년 전 대규모 적자를 내기는 했지만 이후 큰 폭의 흑자를 내는 A기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만약에 스코어 카드와 회계 장부에 ‘조작’이 있었다면 어떨까. A는 캐디에게 부탁해 보기(bogey) 이상을 기록한 홀의 스코어는 모두 첫날 스코어에 몰아서 적고, 2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는 파 혹은 버디(birdy)만 적는 것이다. A는 캐디에게 “4일 합산 기록은 똑같으니 사기 치는 건 아니다”면서 윙크로 감사의 뜻을 표시한다. A기업은 2013∼2015년에 일어날 수 있는 손실을 모두 몰아서 2012년 실적에 반영했다. A기업의 4년 합산 당기순익에는 변함이 없다.

합산 성적이 같은데 굳이 스코어 카드를 조작하는 골퍼는 거의 없겠지만, 손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기업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빅 배스(Big bath)’를 하는 기업이다. 빅 배스는 몸에서 때를 민다는 의미이다. 삼성SDI의 1분기 매출은 1조29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7038억원(738억원이 아니다!)으로 영업이익이 2007%(207%가 아니다!) 감소했다. 삼성SDI의 극적인 실적 하락은 자산가치 하락과 구조조정에 따른 희망퇴직 비용을 1분기에 몰아서 반영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도 최근에 빅 배스를 했다.
빅배스를 하는 기업들은 경영진이 용단을 내린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빅배스는 잠재적 위험 요소를 조기에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성과를 부풀리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 이전의 경영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어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부실을 모두 전임자의 탓으로 돌리고 이후의 성과는 모두 현 경영진의 공(功)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빅 배스를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을 인용해 “한번 하면 철학을 배우지만 두 번 하면 변태가 된다”고 비판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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