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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영화 '생활의 발견'서 발견하는, 자신의 잠재괴물 컨트롤법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영화 ‘생활의 발견’에서는 언뜻 듣기엔 좀 우스운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사람은 못될 지언정 최소한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사람이 어떻게 괴물이 된단 말인가. 괴물이란 게 뭐란 말인가.

이런 취지의 말을 먼저 한 사람은 니체였다. 그는 ‘선악을 넘어서’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그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랫 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말보다 니체의 말은 훨씬 이해하기 쉽다.
영화 '생활의 발견'의 한 장면.

영화 '생활의 발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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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며느리가 다시 못된 시어머니가 된다는 옛 말을 기억한다. 평생 거대한 권력과 싸우면서 서서히 닮아가는 일은, 이 나라의 민주화 투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들의 일부는, 그들이 가장 싫어했던 독재자의 권위주의와 권모술수, 그리고 폭력과 야합까지 배운 혐의가 있다. 홍상수와 니체의 충고를 기억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도대체 무엇이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지를 생각해보는 일도 필요하리라.

우린 공포와 폭력이 버무려진 영화의 처음과 끝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아주 인상이 점잖아 보이고 눈길도 부드럽고 행동도 멋졌던 어떤 존재가 서서히 끔찍한 괴물로 변해가면서 스크린 안을 얼어붙게 만들어가는 공식에 익숙해져 있다. 마지막에는 세상을 삼킬 것 같던 그 악당이 정의의 필사적인 반격에 의해 궤멸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괴물은 처음부터 그런 모양새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하던 어떤 잠재적인 ‘악마성’이 마치 태엽이 풀리는 인형이 작동하듯 세상을 향해 독기를 내뿜는 그런 특징을 지닌다.
요컨대 악마성이란 ‘인간의 보통 성질’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지나친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악마는 처음부터 악마가 아니라 보통사람이 자기의 어떤 성질을 악마적으로 거대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흉악범, 혀를 내두르게 하는 지능범, 그리고 끈질기게 엄습하는 스토커들도, 그 시작은 사소하고 잠재적인 특징을 가진 보통사람이었다. 아니 그들은 다만 아마도 자신의 평생 중에서 겨우 몇 시간을 그런 흉포한 열정에 자신을 몰아넣은 사람일 뿐이다.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많은 편견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관점을 가지는데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괴물의 잠재성과 광기가 발현되는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은, 확실하게 효험이 있는 ‘괴물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첫째 괴물이 되는 정신의 종양은 ‘과도한 자의식’이다. 자기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그것이 타인에 대한 콤플렉스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비약될 수 있다. 많은 철학들은 자기를 바로 바라보는 일에 대해 웅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여전히 서투르다. 어떤 사람은 평생 내적 성찰 없는 삶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거울 속의 자아를 거대하게 키워버린다. 괴물처럼 커진 ‘자기애’는 세상의 모든 타인을 자기의 욕망에 동원하기도 하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 타인들을 삼제해버리기도 한다.

나태와 호색의 악마 '벨페고르'

나태와 호색의 악마 '벨페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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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괴물이 되는 법은 관계에 대한 망상과 집착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야 하며 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 일은 이해도 되지 않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자신과 관련이 있으며 모든 상황과 행위들은 자기에 대한 불길한 암시이며 부당한 공격들이다.

셋째 괴물은,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간은 당연히 욕망을 지니며 건강한 욕망은 삶을 긴장시키고 건전하게 진행시키는 에너지이다. 그런데 욕망의 꼬리에 증폭장치와 집착이 따라붙는 게 문제다. 욕망이 상대와의 소통과 협상에 의해 조절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준과 목표 대로 달성되지 않으면 용납되지 않는 ‘신의 욕망’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욕망에 방해되는 것은 신성불가침 위반이므로 가차없이 제거되어야 하고 응징되어야 한다. 욕망의 좌절에 따른 분노나 세상의 어떤 폭력에 대한 절망도 괴물을 만드는 동기가 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많은 정의의 괴물들은, 정당방위나 정서적인 응징이라는 ‘핑계’ 위에서 마음껏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넷째 괴물은, 세상의 원리에 대한 오분석과 그것을 자기의 삶의 원리로 신봉하는 광기에서 발현한다. 이런 오분석은 집단적인 이념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권력이 떠받드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한쪽을 칼질한 많은 광기들은 하나의 잘못된 믿음들의 조명 아래 펼쳐진 활극인 경우가 많았다.

다섯째 괴물이 되는 길은 삶에 대한 냉소주의와 인간이 설계해놓은 가치 구조에 대한 의심이 깔아놓는 길이다. 지하철에서 사람을 떠미는 행위나 이유없는 방화와 무차별 살인 등 우리가 ‘반사회적 범죄’라고 말하는 것들은 실은 어떤 사회이성이 일부 구성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증거들이다. 괴물이란 이런 경우, ‘괴물’이란 이름의 마이너리티일 수도 있다.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푸코의 연구들은 ‘자신들과 다른’ 인류의 일부를 괴물로 만드는 폭력과 전략들에 관한 리포트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괴물이란, 어떤 작은 ‘정신적 종양’의 발현이라는 과거를 가지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당한 위해(危害)가 되는 현재를 가지며, 장차 인간 다윗에 의해 사라져야할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치부되는 존재다.

어찌 괴물이 되는 길이 이 뿐이랴? 포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과도한 상념이 빚어내는 환영들의 부적당한 현실화일 수도 있고, 실연한 감정의 광포한 발현일 수도 있고, 자신의 지혜나 능력을 과신한 자의 우행이 새끼를 친 결과일 수도 있고, 권력과 금력에 맛들인 자가 기형적으로 발전시킨 탐닉의 견적일 수도 있다. 또 니체의 말처럼 어떤 괴물과의 싸움에서 그 괴물의 눈을 들여다본 자가 다시 괴물이 되는 불행한 릴레이일 수 있다. 또 기계와 기술이 결과를 계측하지 못한 채 낳은 기형적 지혜와 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자기에게 엉뚱하지만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는 건, 유익한 일일 수 있을까. 너는 어떤 괴물인가. 어떤 괴물의 과거이며 어떤 괴물의 현재이며, 어떤 괴물의 미래인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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