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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편지]세상에 이런 일이

최종수정 2016.04.22 06:55 기사입력 2016.04.2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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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경아 기자]어제 저녁, 까닭도 없이 극심한 우울이 찾아왔는데, TV방송에서 하는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게 됐습니다.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사인스피너 청년.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사인스피너 청년.



사인 스피닝을 하는 청년. 길쭉하고 한쪽이 뾰족한 광고보드(뾰족한 이유는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를 돌리는 묘기를 사인 스피닝이라고 하는데, 외국엔 이 기술을 경쟁하는 대회까지 열리고 있을 정도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 있더군요. 고교 시절 TV에서 이 묘기를 보고, 따라해보다가 자신이 갈 길이 이것이라고 생각해, 오직 이것만 하고 살게 됐습니다. 청년은 국제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세계5위를 했죠. 사인보드를 돌리기 위해 기초 체력을 키우고, 방 안이나 바깥이나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늘 돌립니다. 처음엔 남들이 하는 방식을 익히며 돌리다가, 몇 가지 자신의 창안을 넣고 새로운 방법으로 돌려 이 분야의 달인이 되었지요. 방송사에서 찾아와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시켰지만, 겁내거나 거부하는 법이 없었죠. 기꺼이 실험적인 일을 시도하고, 마침내 성공해냅니다. 실패를 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조금 어렵네요. 이것도 한번 계속 해봐야겠어요. 그의 돌파력, 집중력, 노오오오력, 호기심, 낙천주의, 무엇보다도 끝없는 관심, 이 일로 해서 느끼는 무한한 자존감. 이 사인 스피너야 말로, 혁신가이며 자기 삶의 리더가 아닐지요.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한복 붙이는 화가.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한복 붙이는 화가.



아내가 한복집을 하는 한 중년남자는 어느 날 잘라뱅이로 나도는 한복 천들을 캔버스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미대를 나왔으나 먹고사느라 포기했던 예술을 문득 다시 하게된 것이죠. 얇은 한복 천을 겹쳐서 그 다양한 빛깔이 내는 아름다움을 활용해 현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매혹적인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한복에 들어가는 꽃잎 문양들을 오려내 줄기를 달아 상상계의 꽃을 만들어 하늘거리게 하고 낙화하게 하고 햇살에 아른거리게 합니다. 한복집에는 그의 작품이 걸리고, 이 남자는 하루 종일 끝없이 작업에 매달립니다. 잃어버린 꿈을 찾은 사람처럼,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빠가 이렇게 예술에 미쳐 있으니, 문득 자라난 아들이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 주더군요. 남자는 야외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바닷가로 갑니다.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지요. 조금 삭막하게 느껴졌던 뻘밭 해변이 한복의 색감과 그의 상상력을 입자, 천상의 풍경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문득 포착된 아이와 엄마의 실루엣은 현실의 우중충한 개펄에서 천국 속으로 이동합니다. 숨겨둔 재능과 관심들을 폭발시킨 이 남자의 후반의 생. 영감이 살아움직이는 저 천진하고 미묘한 작업들 속에서 새로운 성장을 하는 인간. 멋지지 않은지요.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외발자전거 타는 아이.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외발자전거 타는 아이.



두 아이가 시장통을 돌며 뭔가를 사먹습니다. 열살과 일곱살. 그들의 발밑에는 외발자전거가 붙어있습니다. '붙어있다'는 말이 딱 맞는 것이, 한시도 이것을 발에서 떼놓지 않거든요. 그냥 외발자전거를 잘 타는 정도가 아니라, 벌써 신공을 구사할 정도로 능숙해졌습니다. 타는 걸 좋아하니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느니 이것저것 도전하고 실험해서 이 분야에 관한 한 쫓아올 또래가 일단 없습니다. 방안은 외발자전거 천지더군요. 여러 대의 자전거가 둘러서 있고, 아이들은 거기서도 자전거를 타고 엄마의 가사일을 돕습니다. 외바퀴 위에서 더 자유로운 아이들. 그들에겐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더군요. 아빠가 우연히 사준 외발자전거 때문에 그들의 새로운 인생이 생겨났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의 힘. 좋아하는 일이 이룩해내는 삶의 기적들. 기술이란 한 인간 속에 쌓이는 아름다운 인공지능같은 것이더군요. 매력적이지 않은가요.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스파이더우먼 70대와 셔틀콕 90대(오른쪽) 모녀.

21일 저녁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스파이더우먼 70대와 셔틀콕 90대(오른쪽) 모녀.



70살 된 호리호리한 할머니가 암벽타기를 합니다. 걸음을 하나 하나 떼며 높은 곳으로 오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마음이 스스로 대견합니다. 하나의 도전을 성취해냈을 때의 쾌감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아는 70살이란 개념 속에 저 할머니의 모습이 들어있었던가요. 내가 내 삶의 70살을 전망하면서 저토록 액티브하고 유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던가요. 이 여인의 엄마도 살아계십니다. 그녀의 나이는 90살. 90살이란 나이는 어떤 나이인가요. 이 엄마는 배드민턴을 치십니다. 셔틀콕의 스트로크가 센 건 아니지만, 상황상황에 대응하는 섬세한 기술엔 이길 자가 없더군요. 상대방 진영의 빈 곳에 톡 셔틀콕을 내려놓습니다. 배드민턴이 얼마나 숨찬 운동인지 해봐서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십 할머니는 유쾌하고 당찹니다. 할머니는 마라톤도 좋아해 지금도 뛰고 있습니다. 심폐기능이 어찌나 좋은지, 걸음도 몹시 빠르더군요. 뒤에 따라오는 70살 딸이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조를 정돕니다. 모녀는 남자들 없이 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의 몸을 단련시키면서 끝없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팽팽하고 아름다운 노후의 길을 즐기는 듯 했습니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근육질의 모녀.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더군요.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빛나는 기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한다면, 난 참 대충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는 어떠하신가요.

나경아 기자 isom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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