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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 그날을 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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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추념전 '4월의 동행'

경기도미술관 6월26일까지 열어
공공미술관 첫 전시, 작가 22명 참여
2년새 잊어가는 사회에 경종 울리기
희생자, 유가족과 그날의 아픔 기억


조소희, '봉선화 기도 304', 혼합재료, 2016년

조소희, '봉선화 기도 304', 혼합재료,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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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 사회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봄은, 4월은 여전히 아프고 허망하다. 슬퍼하고 분노하며, 우리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세월호는 그저 사고였다며,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묵살하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대다수가 '그 날'을 잊은 채 살아간다. 그간 우리사회가 보여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역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전국 곳곳에서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하려 한다. 영정들이 모인 경기도 안산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역시 추모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가족들은 혹여 태풍으로 분향소가 망가질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큰 태풍은 오지 않았다. 참기 힘든 상실감, 의지할 수 없는 마음들은 같은 아픔을 겪은 이와 함께, 그리고 그 이웃과 함께 달랠 수 있다. 가족들은 분향소 뒤편 3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경기도미술관 안에 사고 당시부터 유가족협의회 사무실을 얻어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직원들은 지난 2년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유가족의 슬픔을 지켜보았다. 지난 2006년 개관한 미술관은 건립 당시부터 배 형상의 건축물 주변에 해자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해자 안의 물은 전부 빼 두어야 했다. 혹여나 해자를 채운 물이 분향소와 미술관을 지나칠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도 참사 2주기를 맞아 '세월호 추념전'을 개최한다. 공공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세월호와 관련된 전시를 한다. 전시는 오는 16일부터 6월 26일까지 두 달 넘게 이어지며, 제목은 '사월의 동행'이다. 아직 작품 설치 작업이 한창이지만, 분향소 앞마당에는 이미 최정화(55)의 검은 연꽃 모양의 초대형 설치작품인 '숨 쉬는 꽃'이 마련돼 있다. 천으로 만든 연꽃과 공기 주입기를 이용해 꽃잎이 오므라들고 펴지는 '움직이는 꽃'이다.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이 분향소에 헌화되는 것이다.
최정화, '숨쉬는 꽃', 천, 공기 주입기, 2016년

최정화, '숨쉬는 꽃', 천, 공기 주입기,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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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에 검은 연꽃 헌화 '숨쉬는 꽃'
나를 잊지 마세요 '봉선화 기도' 등
예술가 다양한 시선으로 기록, 해석


전시를 열흘 앞둔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의 한식당에서 이번 세월호 추념전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53)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 같다. 우리사회가 이기심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에서 다시금 이날을 기억하며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전시를 준비 중"이라며 "유가족분들께 작년 봄 전시기획과 의도를 정중히 설명했고 승낙을 받았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이날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스물 두 명 중 일곱 명이 자리에 함께 했다. 조소희(43)는 봉선화 꽃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304명의 손을 하나하나 카메라로 찍어 이를 전시장에 펼쳐 보인다.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자들을 모집했고, 6일 동안에 걸쳐 작업을 진행했다. 33개월 된 아기부터, 96세 할머니까지 남녀노소의 손이 작품에 담겼다. 작가는 "봉선화 가루로 두 시간 정도 물을 들이고, 그 자리에서 한 손 한 손 사진을 찍었다. 세 시간 정도씩 걸린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미술관에서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모두 다른 손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사람의 손은 얼굴만큼 그 인생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봉선화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란 뜻이다. 가운데 손가락 마다 물들인 주홍빛 꽃물은 빨간 약을 바른 것과 같다. '봉선화 기도'는 우리 존재의 아픔에 대해 위무하면서, 또한 세월호 참사 304명의 희생에 대한 슬픔, 분노 그리고 기도를 통한 정화가 담겨 있다"고 했다.

홍순명, '사소한 기념비', 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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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읽기', 사운드 설치, 가변 설치,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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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태,'기다리는 사람들', 캔버스에 아크릴,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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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57)은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 인근 한 폐쇄된 해수욕장에서 수집한 사소한 물체들을 랩으로 싸고, 또 그것을 그린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는다. 그는 2년 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다섯 차례 팽목항을 찾았다. 사고가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은 팽목항은 사복경찰과 같은 사람, 관광객인지 추모객인지 모를 사람들을 나르는 대형버스들로 가득했다. 그는 조용히 생각할 장소를 찾았다. 그곳이 바로 서망해수욕장이란 곳이었고, 주변에 떠밀려오는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표나 플라스틱, 스티로폼, 노끈, 조개껍데기, 쇳조각이나 나뭇조각 등 다양했다. 작가는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작업하면서 작품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내 나이 50대 후반,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꼈고 무거운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넋두리 같은 행위였다"고 했다.

안규철(61)은 전시 개막일에 관객들과 함께 시인 박준(33)의 '숲' 등 시 세편을 낭독한다. 시에는 가족 잃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를 한다. 참여자들이 한 부스로 들어가 글을 읽으면, 동시에 그 소리가 녹음되고 향후 시각장애인들에게 그 기록이 전달될 예정이다. 작가는 "우리 아이들이 아마 지금쯤이면 읽을 수도 있었을 책, 아름다움에 대해, 젊음과 우정에 대해, 인내와 슬픔과 고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행위로 언젠가는 우리의 목소리가 먼 곳까지 닿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리운 사람들에게 닿을 거라는 희망으로 읽기를 권한다"고 했다.

이번 추념전은 세월호 희생자 및 가족들과 '동행'하고, 참사를 '기억'하고, 사건과 관련한 '예술적 기록'을 남기는 것을 큰 줄기로 삼아 기획됐다. 다양한 분야와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해석해낸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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