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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수'를 둔 알파고를 보고, 속이 시원했는가

최종수정 2016.03.14 09:54 기사입력 2016.03.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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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디터 칼럼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며칠 전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글을 쓰려고 별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저 일에 대해 뭐라고 군더더기를 달겠는가. 그저 입 다물고 감상하고 곱씹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제 오후 내내 펼쳐진 바둑을 축구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면서, 기술문명의 전위에서 싸우는 인간 이세돌의 내면에 100% 빙의했다. 세 판 내리지고, 5전3승의 왕관은 이미 내줬는데, 뒤늦게 이긴 1승이 뭐 대단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3승을 내리 깨지면서 가중된 무력감과 공포감 같은 것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것으로 보자면, 이것이야 말로 이 특별한 스토리의 기막힌 반전 대목이 아닌가.

인공지능이란 말 앞에 붙은 인공(人工)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창조자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영어로 쓰인 artificial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것 사이의 대결은 인간문명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동속도를 이긴 마차와 자동차의 역사, 날개 없는 인간을 이긴 비행기의 역사, 샘물에 목을 축이던 인간을 이긴 댐과 상수도의 역사, 태양의 빛을 즐기던 인간을 이긴, 수많은 빛들의 역사, 인간 체력의 수많은 약점을 이긴 기계, 기계들. 인간의 계산능력을 이긴 컴퓨터의 발명, 인간의 사회생활을 뒤바꾼 네트워크. 이 모든 것이 인공의 대약진을 말해주는 우렁찬 사례들이다.

그러나 그 기계를 창조한 존재는 인간이기에, 기계들은 오로지 인간의 삶에 복무하는 종속적이고 부속적인 위상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서열 관계가 가능했던 것은, 기계를 창조할 수 있는 '두뇌'의 정수는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조차도, 인간의 지능의 최정상을 흉내내거나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세돌의 바둑이 중요한 것은, 워낙 천변만화의 경우의 수를 지닌 바둑이라는 게임을 인공지능이 완전히 터득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창조주의 '전제'를 허물어뜨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세돌의 1승은, "휴우, 아직은 그래도..."라는 안도감을 선사한 쾌거가 된 것이다. 물론 시간적인 단서가 붙은 잠정적인 안심이다.

알파고에 대한 경탄과 조롱은 사실 같은 심사에서 나오는 다른 반응이다. 78번수 이후에 인공지능이 뻘짓을 한 자취들은 이세돌을 비롯한 인간들을 기분 좋게 할 만한 황당한 서비스였다. 알파고가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비범한 통찰에 나가떨어진 기계의 지능을 바라보는 일은 인간 존재 전반의 값어치를 고양시키는 기분을 줬기 때문이다.

알파고라는 기계는 왜 무서운가. 지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지치지 않아서도 아니며 연산속도가 빨라서도 아니다. 그의 능력이 지닌 경쟁점의 핵심은 '학습'이다. 알파고는 인간의 바둑을 학습해서 인간과 대적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입력시켜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인간도 학습을 하지만, 그만큼 많이 그만큼 빨리 학습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인간의 판단 정보는 경험과 계산과 영감으로 이뤄지지만, 인공지능의 판단은 승리의 종점을 정해놓고 매번 두는 수마다 거기에 최적화된 한 수를 찾아낸다. 그 판단은 틀릴 수가 없다. 인간은 바둑 전체를 미리 두어보면서 한 수 한 수를 두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알파고는 패배했을까.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 속에 없는 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수가 치명적이고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알파고는 버그가 생긴 듯 '떡수'를 두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당황이 어제 게임의 핵심이다. 오직 이기는 것으로만 설계된 컴퓨터들이 이길 수 없는 확률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그래도 이기는 방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소용도 없는 무리수를 두는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알파고의 학습이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의 향후 진화방향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랑해온 고도화된 지적 작업 중에 '학습'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던가. 인간의 모든 지적 능력의 총체는 오로지 '학습'의 좋은 결과가 아니었던가. 정치인들이 인공지능을 달고 정치한다면? 경영자들이 인공지능을 달고 기업을 경영한다면? 군인들이 인공지능을 달고 전투를 벌인다면? 신문기자들이 인공지능을 달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논설을 쓴다면? 우린 '알파고'보다 빨리 혹은 많이 학습해서 그 경쟁자를 이길 수 있을까. 우리의 자리는 과연 남아 있을까. 이것이 '알파고 우울증'이 생긴 문제의 핵심이다. 학습하는 지능은 지금 현재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진화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에 그 공포의 실체가 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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