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안가면 네 아비가 가야 한다. 어차피 조선 여성은 다 가게 돼 있다”
“일본 가서 일하면 여학교도 보내주고 대학도 갈 수 있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김민영 수습기자] #.해방을 앞두고 10대 소녀들(당시 12세~18세)은 학교 선생님과 모집원이 꾀거나 몰아붙여 일본행 배에 올랐다. 태평양전쟁으로 인력·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이 꾸린 이른바 ‘여자근로정신대’다. 바다를 건너 시모노세키항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도야마의 군수기업 후지코시(당시 후지코시 강재공업).
해방 후 70년도 더 흘렀지만 후지코시는 “일본 판결과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은 없다”며 이제는 80~90대 희끗한 노년을 맞은 소녀들의 한(恨)을 외면하고 있다. 일본 사법부는 “면학 기회 등이 충분히 보장되는 것처럼 속여 근로정신대를 동원함에 있어 일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고, 후지코시도 설명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면서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들어 2011년 10월 할머니들에 대한 패소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부장판사 이정민)는 9일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됐던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번 소송은 김옥순(87) 할머니, 박순덕(84) 할머니, 오경애(86) 할머니, 이석우(86) 할머니, 최태영(87) 할머니 등 피해자 5명이 제기한 2차 소송이다. 다음 재판은 오는 5월 11일 열린다.
앞서 우리 법원은 근로정신대 생존 피해자 13명과 사망 피해자 4명의 유족 등이 위자료 포함 1인당 1억원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피해자들에게 8000만원~1억원을 지급하라”며 2014년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후지코시가 이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소송 제기 3년만인 오는 5월 13일 서울고법 민사12부가 선고를 앞뒀다. 법원 관계자는 “외국기업을 상대로 소송이 진행되다보니 소송서류를 보내는 문제 등으로 진행이 빠르지 못하다”고 전했다. 강제동원 당시 10대 소녀였던 피해자들은 어느덧 80~90대 고령으로 사과·보상을 받기도 전에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김민영 수습기자 my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