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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그림을 빚어 도자기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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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예와 2차원 회화의 결합…이승희 개인전 'TAO(도)'

'TAO(도)' 시리즈. 이승희 作, 2015년

'TAO(도)' 시리즈. 이승희 作,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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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구워 만든 흰 캔버스에 조선 백자가 들어 있다. 순백의 달항아리, 매화꽃 핀 청화백자, 구름 사이로 비상하는 호기로운 용, 고상한 학을 그린 용문매병과 운학문매병이 보인다. 평평한 사각 판 한 가운데 조선 백자를 올려놓았다. 매우 얇다.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조형미, 고상한 문양이 들어간 도자 공예를 평면회화에 담았다.

그림이 된 도자기. 그러나 작가는 도자기를 그리지 않았다. 전통 도자 제작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이를 납작하게 만들어 캔버스와 한 몸이 되게 했다. '평면 도자 회화'라는 독보적인 작업세계를 개척해 온 이승희(58)의 작품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네이쳐포엠 빌딩 안에 있는 박여숙화랑에서 이승희의 개인전 'TAO(도)' 전이 열리고 있다. 온통 하얀 전시장 벽 곳곳에 멋스런 우리 조선 백자들이 걸려 있다. 도자와 회화를 결합한 '평면 백자'는 옛 도자기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것도 아주 새롭게, 공들여 감상하게 한다.
이 독특한 작품에서 도자기의 기능성은 배제됐다. 하지만 도자기의 재료와 미감은 똑같이 발현된다. 캔버스 역할을 하는 바탕 부분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흙의 질감을 살리되, 도자기는 유약을 발라 고전 도자기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대비를 강조했다. 바탕이 되는 판의 두께는 8㎜, 화면의 주인공인 도자기의 두께는 3.4㎜이니 전체 두께가 1.2㎝도 되지 않는다.

'TAO(도)' 시리즈. 이승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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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O(도)' 시리즈. 이승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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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O(도)' 시리즈. 이승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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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를 평면으로 바꾼 파격적인 도자 형식은 놀랍다. 흙은 가마에서 구우면 유리화되는 과정에서 열기에 의하여 휘는 성질이 있다. 이승희는 가마 온도를 평균보다 60도 높은 1340도로 맞춰 어려움을 극복했다. 휘는 성질을 고온으로 죽인 것이다.

지난 12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옆집 아저씨와 같이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을 탐구하며 작품을 만들어 온 작가는 "내 작품이 최초인지는 모르겠다.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거나 배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승희는 청주대학교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30년이 넘도록 흙을 주무르며 살아왔다. 요즘 조금씩 우리 공예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지만 그가 도예를 공부할 때만 해도 국내 미술에서 공예는 회화나 설치작업, 영상과 같은 장르에 비해 주목도가 한참이나 떨어졌다. 그는 흙이 좋아 도예를 했지만 '열등감 같은 어떤 콤플렉스'가 늘 있었다고 했다. 또한 '도자기'라는 한정된 형태에 갑갑함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흙이라는 재료와 도자의 예술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조형성을 갖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가 '평면 도자 회화'라는 장르를 개발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전까지는 도자기를 빚고 흙을 재료로 한 설치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생활자기도 8년 동안이나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온전히 자신만의 독창적인 도자 회화를 실험해 볼 기회가 생겼다. 그는 지난 2006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고장인 장시성의 경덕진을 찾아갔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길을 나섰다. 이 여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승희는 그곳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경덕진은 2000년 이상 도자기를 생산해 온 곳이다. 도자기 생산인구가 전체 인구의 70%를 넘는다. 작가는 "여행 삼아 갔는데 그곳에서 중국, 아시아, 동양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이 동양의 미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장한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 미술 교육을 받고 자라 서양 작품에 감동받아왔다. 조선시대나 중국의 명ㆍ청대 대가들의 작품을 보려고 박물관에 가본 기억이 없다"며 "경덕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경덕진에 틀어박혀 온갖 구상과 실험을 거듭했다. 또한 박물관을 숱하게 다니고 책을 탐독하며 무수한 도자기를 만났다. '평면 도자 회화'를 만들면서 옛날 도자기를 보는 방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승희는 "청화백자의 푸른색과 흰색에도 수십 가지 색이 있음을 알았다. 예를 들어 푸른색은 초콜릿색이나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 미세한 차이를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고 했다. 평면 도자 회화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전통 도자기법으로 3차원의 도자기를 2.5차원의 평면으로 완성하는 데는 섬세한 감각과 오랜 인내가 필요했다. 작가는 "흙의 종류, 수분의 양, 불의 온도, 염료의 농도 등을 기록했다. 이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승희는 경덕진에서 농부처럼 산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내내 작업을 한다. 작업과 관계된 업무는 오후 다섯시에 마친다. 경덕진에 있는 공방들도 대부분 그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작가는 "캔버스가 되는 평면 도자의 무게만 해도 120㎏이나 되는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스태프가 열 명 정도 필요하다.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국내에서는 도자제작 인력을 꾸준히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경덕진에서 계속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승희는 1993년 서남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사유된 문명전'을 열어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뉴욕 신갤러리와 미국 팜비치 월리 핀레이 갤러리, 그리고 국내 박여숙 화랑에서의 개인전에서 '평면 도자 회화'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한국공예의 법고창신' 전시를 통해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등에 작품을 선보였다. 오는 7월에는 프랑스 발로리스 비엔날레에서 초청 전시를 한다. 'TAO(도)' 전은 다음달 18일까지 열린다. 02-549-7575.

valere@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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