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영화]3년 만든 영화, 극장서 7일 만에 사라진다...표준계약서의 함정
하루 1회 상영으로 일주일 채우고 종영 통보
투자 회수 경로 전체 붕괴
수백 명이 수년을 매달린 영화가 극장에서 일곱 번 상영되고 사라진다. 사고가 아니다. 계약서에 명문화된 구조다.
현행 영화 상영표준계약서는 최소 상영 일수를 7일로 규정한다. 이 숫자는 2000년대 초반 멀티플렉스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자리 잡았다. 과거 단관 극장 시대에는 최소 상영 기간이 명문화되지 않았고, 흥행 여부에 따라 몇 달씩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극장 체인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최소 7일'이 표준으로 굳어졌다. 배급사는 상영관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수' 기준이지, '상영 횟수'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루 한 차례, 이를테면 오전 10시 단 1회만 상영해도 계약상 '1일 상영'으로 인정된다. 관객이 오기 어려운 시간대에 배치하면 좌석은 비어도 날짜는 채워진다. 7일간 하루 1회씩 틀면 총 7회로 계약 의무를 충족하고, 종영 통보가 가능하다.
흥행 상위 영화에 스크린을 집중할수록 단기 수익이 극대화되는 구조에선 신작이 들어오면 기존 상영작을 빠르게 털어내야 한다. 최소 상영 일수 7일 규정은 이 회전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장치로 전락했다.
독립영화 제작자 A씨는 "3년 동안 만든 영화가 극장에서 1주일 만에 사라졌다"며 "상영 횟수를 세어보니 스무 번이 채 안 됐다"고 토로했다. "이마저도 오전 첫 타임에 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계약서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황당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극장 입장에선 빠른 스크린 회전이 생존 전략이다. 멀티플렉스는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한다. 좌석 가동률이 30%만 넘어도 흥행작으로 분류되는 한국 시장에서, 관객이 적은 영화를 오래 틀면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극장 체인 관계자 B씨는 "한 스크린당 월 유지비가 수천만 원인데, 빈 좌석을 채우지 못하면 적자"라며 "현실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의 장기상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기 종영은 극장 수익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작비 회수 경로 전체를 망가뜨린다. 극장을 떠난 영화는 곧바로 IPTV나 OTT로 향한다. 통상 충분히 소비되지 못한 영화는 IPTV 단가도, OTT 판권료도 낮게 책정된다. 극장에서 버티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후속 유통에서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이다.
배급사 관계자 C씨는 "극장 흥행 실패작은 2차 시장에서도 사실상 단가 인하, 이벤트 등을 강요받는다"며 "그나마 유명 배급사들은 흥행 영화와 묶어서 판매해 손실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금 회수율이 떨어지고 다음 영화에 투자할 여력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국"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국내 극장에도 장기상영 문화는 존재했다. '변호인(2013)'·'강철비(2017)' 등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서편제(1993)'는 몇 안 되는 극장에서 1년 넘게 상영되며 1000만 관객을 넘겼다"며 "한국 영화가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1~2주 만에 1000만 명을 뽑는 영화보다 '서편제'처럼 장기 상영된 영화가 극장에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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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는 "문화 다양성과 공정성은 보편 가치가 아니라 산업 성장에 필요해 주장하는 것"이라며 "당장 눈앞의 결실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산업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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