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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원숭이 엉덩이 원래는 안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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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하고 재주많고, 성공·건강 뜻하는 동물로 여겨져
과거 급제·벽사 등 옛 조상들 소망 담은 그림에 등장
게와 다투던 원숭이, 엉덩이 꼬집혀 빨개졌다는 설화

안하이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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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병신년(丙申年)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서른세 번째에 해당한다. 역술가들은 올해가 '붉은 원숭이 해'로, 액운을 막아주는 붉은 색과 재주가 많은 원숭이가 만나 '재능을 살려 큰 성공을 이룬다'고 풀이한다. 또한 원숭이는 십이지(十二支)에서 아홉 번째다. 시간상 오후 3~5시, 방향으로는 서남쪽, 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원숭이는 인간과 닮은 모습, 흉내를 잘 내는 습성 때문에 간사하고 재수 없는 동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리하고 재주가 많으며, 자식과 부부 사이에 사랑이 극진한 동물로도 알려졌다. 특히 중국에서 원숭이는 건강, 성공, 수호를 뜻하는 동물이다. 조선시대 미술품 중에도 출세, 벽사(邪), 모정(母情)을 뜻하는 원숭이 그림이 여럿 있다.
원숭이해를 맞아 관련 전시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과거 우리 생활 곳곳 길상(吉祥)의 소재로 등장하는 원숭이와 현대미술로 표현한 원숭이 군상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장 두 곳에 다녀왔다.

봉산탈춤에 사용된 원숭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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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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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展 =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난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그림,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다. 원숭이가 나뭇가지로 게 두 마리를 잡는다. 게 두 마리는 소과(小科), 대과(大科)를 뜻한다. 과거(科擧)에 급제해 높은 벼슬에 오르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게와 원숭이는 그림 밖에서도 자주 함께 등장한다. 원숭이의 엉덩이가 빨간 이유를 설명하는 설화도 있다.

'게와 원숭이가 떡 다툼을 했다. 원숭이가 떡을 가로채 나무 위로 올라가 게를 놀렸다. 그런데 떡을 혼자 먹으려다 실수로 땅에 떨어뜨렸다. 게가 얼른 떡을 주워 굴속으로 도망쳤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엉덩이로 게의 굴을 막고 방귀를 뀌었다. 그때 게가 앞발로 원숭이의 엉덩이를 꼬집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털이 뽑힌 채 빨갛게 달았다. 게의 앞발에는 아직도 원숭이 엉덩이에서 뽑힌 털이 붙어 있다.'
조선후기의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년)이 그린 송하고승도(松下高僧圖)도 있다. 원숭이가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노승에게 두 손으로 불경을 바친다. 중국 명대(明代) 소설인 '서유기(西遊記)'에서 삼장법사를 모시는 손오공을 연상케 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송암 윤엄(1536~1581년)의 그림으로 알려진 '원록도(猿鹿圖)'에는 소나무 가지에 앉은 원숭이 두 마리와 사슴이 보인다. 원숭이와 사슴은 출세와 재복을 상징한다. 원숭이들이 천도복숭아를 들고 먹으니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마음도 겸했다.

전시장에는 그림에 등장하는 원숭이를 닮은 원숭이 사진도 함께 걸려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이 작업을 할 때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육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안하이갑도'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긴꼬리원숭이과에 속하는 '일본원숭이', '원록도'에 나오는 원숭이는 긴팔원숭이류인 '흰손기번'이다.

건물에 위엄을 더하고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추녀마루 위에 일렬로 세운 잡상(雜像) 가운데 하나인 원숭이상, 봉산탈춤이나 강령탈춤에 등장하는 원숭이탈도 전시됐다. 벼루를 장식한 원숭이도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43)는 "민속탈춤에서 원숭이가 나타나는 장은 승려를 흉내 내며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대목이다. 벼루에 새긴 원숭이는 벼루를 갈아야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출세를 상징한다"고 했다.

원숭이는 수많은 영장류를 총칭하는 명사다. 지구에 사는 원숭이는 몸무게가 80g도 안 되는 아기여우원숭이에서 200kg이 넘는 고릴라까지 454종에 달한다. 구석기 시대에 한반도에도 원숭이가 서식했다는 사실은 원숭이 뼈 화석을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화석은 평양 상원군 검은 모루동굴, 충북 청원군 두루봉 동굴과 단양 구낭굴, 제천 점말동굴 등 여러 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선사시대 이후 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다. 조선 초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들어왔다는 가설만 있다. 그러나 원숭이 상(像)이나 조각 그림은 통일신라시대 무덤의 부도, 고분벽화, 석관 등에도 보인다. 모두 불교가 전래된 이후의 유물이다. 전시는 다음달 22일까지. 02-3704-3114.

신세계갤러리 '호기심 상자 속 원숭이' 전시 설치전경

신세계갤러리 '호기심 상자 속 원숭이' 전시 설치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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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상자 속 원숭이' 展 = 신세계갤러리는 서울 소공로 본점과 부산 센텀시티점에서 원숭이를 주제로 잇달아 전시회를 연다. 인류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원숭이를 통해 인간 삶의 다양한 면면을 반추해보는 현대미술전이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 성이 난 원숭이를 담은 회화, 조각, 설치 작품, 오브제와 사람이 나무에 올라 타 원숭이 흉내를 낸 퍼포먼스 영상까지 나와 있다.

유전학 연구 결과는 인간의 유전자 구조가 침팬지와 98.4% 일치한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인간과 원숭이를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요소는 1.6%에 불과한 유전자 차이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발명, 예술,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능력 등 그들만의 특성들이 있다. 이번 전시는 원숭이와 인간의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미술로 담아냈다. 그래서 마치 인간이 원숭이로 둔갑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이경민 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34)는 "벌거벗은 채 언어를 박탈당하고 동물원 우리에 갇힌 인간을 상상해보라. 그는 직립보행을 터득한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며 "인간이 원숭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동시에 신체 구조나 분자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도 닮아있다는 모순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흥미로운 특징이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원숭이로부터 영감을 얻은 원천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달 28일까지. 02-310-1923.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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