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구채은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1.75% 금리 동결' 선택은 아직은 금리인하 실탄을 아껴야 할 때라는 판단에서였다.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한은은 디플레이션 및 자본유출 우려, 가계부채 부담 등 각종 국내외 변수로 고민해 왔다. 금리를 한 번 더 내리자니 자본유출과 가계부채가 가장 큰 고민으로 작용했다. 금리가 1.75%로 떨어진 상황이라 추가로 더 내릴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었다.
동결 결정도 쉽지 않았다. 부진한 경기 회복세에 맞서 확실한 경기부양 의지를 피력하려면 2개월 연속으로 금리를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 효과 지켜볼 때‥실탄 더 어려울 때 써야
국내 채권시장 전문가 대부분은 한은이 이번 달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봤다. 한은이 바로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렸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 붕괴 및 미국 9·11 테러가 겹쳤던 2001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 당시를 제외하고 기준금리가 2개월 연속 인하된 적이 없다.
생산, 투자, 고용, 물가, 수출 등 주요 지표들이 혼조세를 띄고 있는 것도 동결 결정에 힘을 실었다. 우선 생산, 소비, 투자 등 우리나라 경제활동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가 지난 2월 일제히 증가세로 돌아섰다.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3.1로 전월 대비 0.6포인트 상승했다. 지표의 개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하지만 수출과 물가에 대한 우려는 더욱 깊어졌다. 지난달 우리 전체 수출은 469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감소하며 3개월째 뒷걸음 치는 모습을 보였다. 3월 소비자물가도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올 초 담뱃값을 2000원 올린 데 따른 물가 인상 효과(0.58%포인트)를 제외하면 2월에 이어 또다시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한 셈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도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유럽·일본의 양적완화 조치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월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가계 빚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모기지론양도 포함)잔액은 570조6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4조6000억원이 늘었다. 특히 1%대 초저금리 시대로 진입하면서 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주택담보대출이 폭증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418조4000억원)은 3월 한 달간 4조8000억원이나 늘었다. 작년 3월 증가액(8000억원)보다는 6배나 더 많은 수치다. 정부가 안심전환대출 출시에 이은 서민금융 지원대책을 준비하며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있지만 금리를 또 내리게 되면 활활 타 오르고 있는 가계부채라는 불길에 기름을 쏟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기준금리를 지난달에 내렸기 때문에 아직은 효과를 지켜보는 게 낫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낮추면 어려울 때 써야할 '실탄'만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최악의 상황이 아닌 이상 과거에 금리를 2개월 연속한 인하한 적이 없다"며 "2개월 연속 금리 인하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더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준금리 인하, 다음 달 나설까?
이번 달 금리가 동결됐지만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주요국들이 도미노처럼 통화완화에 동참하고 있는 데다 이주열 총재도 거시경제를 통화정책의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게 주요 근거다.
시장에서는 금리가 더 내려간다면 그 시점은 6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채현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연내 금리를 내린다면 미국이 움직이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면서 "6~7월 정도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팀장도 "가계신용위험을 살펴 3~4분기 초에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후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한은이 다음 달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세 차례 금리인하 후 미약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면서 자산이 늘어나는 등의 효과가 보이고 있다"며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서기 전에 가급적 빨리 다음달이라도 추가 인하를 단행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보다는 '효과'를 높이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석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도 "1.5%까지 떨어질 정도로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전제한 뒤 "1.75%로 기준금리를 낮춘 효과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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