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면 그 재미없는 조회가 어김없이 뙤약볕 아래서 거행됐다. 왜 그놈의 조회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만날 '거행되었'는지 모른다. 받들어총 자세의 삼엄한 사열 분위기를 짧은 동사 속에 집어넣고 싶었을 것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 하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하고 애국가 삼절까지 제창하고 나면, 빨리 들어갈 생각밖에 없는데, 그제야 교장샘(선생님이 아니고 샘이었다. 경상도에서만 그러는 것이었겠는데, 선생님은 샘보다 훨씬 서먹하고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샘처럼 퐁퐁 솟아나는 신비감도 없다)이 단상에 오르셔서 훈화를 시작하신다.
훈화, 가르침의 이야기.
차렷 경례하고 열중쉬엇 한 뒤로, 슬그머니 짝다리 짚는 녀석들이 늘어나면 뒷줄에 서 있던 담임샘이 다가와 나무로 된 지휘봉으로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교장샘은 월요일마다 무슨 가르침이 그리 많았던가. 지난 주에 한 것과 그리 다르지도 않은 얘기를 아낌없이 늘어놓으셨다, 기성회비 제때제때 안내는 학생이 많아졌다는 통탄을 애교심과 슬그머니 비교하며 풀던 구라 정도였는데, 이야기 중에 슬그머니 부아가 돋으신 교장샘은 언성이 갈 수록 높아지셨고 곁길로 샌 훈화는 중심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제 말꼬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가 훈화시간에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무 콘텐츠 없는 가운데서도 저토록 오랫 동안 훈화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점과, 훈화의 의미없음을 견디면서 속으로 펼쳤던 팬터지의 내공이 아니었을까 한다. 또한 등줄기에 땀이 몇 줄기 흐르는 가운데서도 양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버텼던 인내심의 육성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름마저 훈화이니 상호 교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려꽂히는 말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장샘은 정말 지금 하는 훈화가 참된 소통이라는 최면에 걸린 듯 거품을 물며 단상을 치고 어깨를 주억거렸고 때로 "안 그렇습니까, 여러부운?"하면서 정상에 선 하이에나처럼 날렵하게 목을 내려앉혀 섬뜩하게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훈화는 몇 가지 뻔한 계략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엔 '훈화란 건 본시 재미없는 것이라 길게 하면 환영받지 못하니 짧게 하겠다'고 시작하는 바람에 잔뜩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러다 중간도 안 되었는데 '끝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면'이란 유인으로 우릴 다시 붙들었다. '끝으로'는 그러나 그 뒤로도 서너 번이 더 있었음은 물론이다.
훈화의 내용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병아리들을 잔뜩 세워놓고 스스로의 열정에 사로잡힌 목소리로 끝없이 이어지던 그 엿가락 훈화의 졸리는 선율은 놀랍게도 귓전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때 어쩌면, 인생은 저 끝나지 않는 훈화처럼 내 위에 버티고 서서 끝없이 무엇인가를 내게 설교할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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