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할 곳 없어 자사주 사는 기업들
[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글로벌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자사주 매입에 열 올리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이 지난해 사들인 자사주 규모만 5000억달러(약 517조1000억원)에 이른다고 최근 소개했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과 비슷한 규모다.
기업이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의 33%는 자사주 매입에 쓰였다. 애플이 2012~2015년 사들이기로 결정한 자사주 규모만 130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투자할 곳이 없고 금리가 낮다 보니 자사주를 투자처로 삼은 탓이다. 건축자재 소매업체 홈디포의 캐롤 토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고 말했다.
기업이 남는 자본과 초저금리 융자금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 주가가 오르면 주주와 경영진 모두 득을 본다. 칼 아이컨, 데이비드 아인혼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에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거침없이 사들이는 동안 S&P 500 지수는 물론 영국ㆍ독일의 주가 지수도 사상 최고치로 올라섰다.
상황은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기업들은 과거 배당에 무게를 뒀지만 지난 10년 사이 자사주 매입이 활발해졌다. 중국의 온라인 게임업체 텐센트, 도요타ㆍ미쓰비시ㆍNTT도코모 등 일본 유수의 기업들도 기록적인 수준의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
자사주 매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사주 매입으로 성과에 취해 기업의 약점이나 문제 해결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투자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확대와는 거리가 멀다.
미 석유기업 엔론의 회계부정 문제를 들춰냈던 공매도 전문가 짐 캐노스는 "현재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무모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S&P 500 기업의 66% 정도가 자본투자, 배당, 자사주 매입에 들어온 현금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돈 빌려 자사주를 사들인 것이다.
실적이 부진한데도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부터 끌어올려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경우도 있다. 2011년 휼렛패커드(HP)가 좋은 예다.
고율 과세 회피 차원에서 해외에 막대한 자금을 쌓아둔 기업의 미국 내 조직이 안게 되는 부담은 커졌다. 미국 내 현금흐름만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려다 보니 외부에서 자금을 빌리는 일이 잦아진다. 애플처럼 현금흐름이 양호한 업체가 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이에 자사주 매입 열기가 이미 식어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 기업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던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장기 투자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 속도 조절에 나섰다.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2012년 이후 연간 30억~40억달러로 유통망 확대를 추진 중이다.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50억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 설립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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