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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尹일병이 부러워, 내 아들은 死因도…”

최종수정 2014.08.08 08:14 기사입력 2014.08.0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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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근 일병, 김훈 중위를 아십니까
-더 억울한 '제2의 尹일병' 그대로 남아 있어
-언론에 이름 한 줄 나오지 않은 채 '외로운 싸움'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우리는 차라리 윤 일병이 부럽습니다. 최소한 부대에서 무슨 일을 겪었고 왜 죽게 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6일 '의무복무 중 사망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유가족협의회' 기자회견은 숙연하게 진행됐다. 유가족들은 북받치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일병 사건으로 '군 의문사'가 모처럼 여론의 관심으로 떠올랐지만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은 여전히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한해 100여명의 군인이 자살로 처리되고 있다. 당국은 애인 변심, 가정불화 등을 사유로 들고 있지만 가족들은 멀쩡한 자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제대로 된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자살로 죽었다"는 통보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항변이다.

윤일병 사망 사건 관련 긴급현안보고

윤일병 사망 사건 관련 긴급현안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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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국방부나 관련 기관과 단체를 쫓아다니고 기자회견과 1인 시위 등을 하며 해법을 모색해도 메마른 시선만 확인할 뿐이다. 억울함을 호소해도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 출범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지만, 2009년 활동을 종료하면서 국가 차원의 조사도 명맥이 끊겼다.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4년 발생한 허원근 일병 사건이다. 부대 안에서 가슴과 머리에 총 3발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M16 소총으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총을 쏠 자세가 나오는지 의문이고, 현장 사진에 피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살 이후 옮겨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8월 "허 일병은 술 취한 하사관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법원도 2010년 2월 1심에서 타살로 결론을 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2013년 8월 자살로 다시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 아버지 허영춘(74)씨는 당시 "판사가 국방부 주장 그대로 말했다"면서 참담함을 토로했지만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또 다른 대표적 군 의문사인 김훈 중위 사건은 대법관 판결까지 나왔다. 김훈 중위는 1998년 2월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는데 자살로 처리됐다. 타살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김 중위 아버지는 3성 장군 출신이지만 군을 상대로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는 데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판결에서 "초동수사를 담당한 군사법경찰관이 현장조사와 현장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품을 확보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타살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허 일병이나 김 중위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언론에 이름 한 줄 나오지 않은 채 '외로운 싸움'을 하는 유가족들도 적지 않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군 조사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유가족들은 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면서 "국가가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를 설치해 의문의 죽음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맡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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