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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당신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누구입니까?

최종수정 2014.04.20 09:01 기사입력 2014.04.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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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바후차라 마타'의 한 장면.

연극 '바후차라 마타'의 한 장면.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당신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막상 질문을 받으면, '남자다', '여자다'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 퍼센트쯤일까?

영화 '킨제이 보고서'가 이야기 하듯, 현실 안에서 성적 정체성은 남자와 여자로 딱 잘라 양분할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이성애자 외에도 동성애자, 무성애자, 그리고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 남자라고 생각하는 여자,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같은 남자,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같은 여자,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혹은 여자, 남자라고 생각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 혹은 남자, 남자라고 생각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 등등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지점들이 있다.

이달 초부터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인 '바후차라 마타'는 성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을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성 소수자들의 인권'이란 프레임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이들의 삶 역시 우리 안의 삶 중 하나'로 전제하고, 관객과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는 연극이다. "여자는 무엇인가, 또 남자는 무엇인가. 남자와 여자가 사랑한다는 것, 두 남자 혹은 두 여자가 사랑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번 공연이 또 남다른 것은 우리나라 배우 6명과 함께 인도 배우 4명이 합세했다는 점이다. 연극을 올린 극단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4년간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여행하면서 인도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인도의 지역 공연들을 숱하게 살펴봤고,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인도신화에 대해 배웠다. 특히 인도의 젠더 전환자 커뮤니티 '히즈라(Hijra)'들을 알게 됐고, 이들이 어머니로 섬기는 신화 속 신 '바후차라 마타'가 바로 이번 공연의 제목이 됐다. 대본은 인도와 한국 성소수자 3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채록한 이야기들이 바탕이 됐다. 이들의 삶, 고통 그리고 생각들을 토대로 인도 배우들과 합작으로 만들었다. 무대는 배우들의 흐느낌, 외침, 대화와 춤 그리고 인도의 전통음악과 막과 막 사이의 독백, 질문으로 구성된다.

배우들의 연기가 끝난 뒤에도 공연은 지속된다. 무대 위에선 200개의 각양각색의 방석이 쏟아지며 관객들을 무대 위로 유도한다. 그때부터 배우와 관객의 대화가 이어진다. 한 여성 배우는 "평소에 남자다 여자다 규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편이었는데, 공연을 통해 제 3의 성을 가진 사람이 돼 보았고, 이들의 삶들을 고민해봤다"며 "내 몸의 영역이 남자와 여자를 넘나들며 조금은 커진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남성의 몸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여성으로서의 내 몸은 어떠한가하고"라고 술회했다. 또 다른 한 남성 배우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해맑게 웃으며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들을 만나면서 놀랐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건강한 그들을 보면서"라며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 역시 성소수자들에 대한 구분 짓기나 편견을 조금은 버릴 수 있겠다는 평이었다. 한 관객은 "무대 위의 격자로 그어놓은 선들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몸짓, 관객과 함께하는 대화 모두 이 연극이 나와 남을 구분하는 시선을 버리고 성소수자들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대화하기 위한 좋은 장치로 받아들여진다"고 평가했다.

수많은 스펙트럼의 성(性)들. 이를 인정하고,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대 위에 풀어놓은 '바후차라 마타'. 연극은 '나는 여자인가? 남자인가?'를 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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