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 ·한지 ·섬유 ·금속 ·나전칠기 분야
최고권위 트리엔날레 전시관서 열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한국 고유의 '한산모시'라는 섬유는 1500여년 전 만들어지기 시작해 오랜 역사를 계승해 왔으며 요즘에도 옛 방식과 도구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유럽국가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디자인, 생산 방식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미술ㆍ디자인 분야 이탈리아 평론가 질로 도르플레스)
세계 최대 규모 디자인 전시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 개막(8일, 현지 시간)을 앞두고 출품된 우리나라 전통공예작품을 미리 본 현지 유명 평론가들이 쏟아낸 찬사다. 전시장 천장에 일렁이는 100장의 '한산모시 조각보'부터 맑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18개의 금빛 '방짜유기 좌종', 하얀 분으로 하늘과 바람을 순간적으로 그려낸 '분청사기' 등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한국의 미'에 평론가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디자인 위크는 매년 외국인 19만명을 포함, 30만명 이상 방문하는 대규모 행사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또는 국가 간 겨루는 디자인 트렌드 경연장이다. 가구, 패션, 전자, 자동차, 통신 등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가구박람회장을 비롯해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소개된다. 전체 2500여개 전시 중 하나가 우리 공예작품을 소개하는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전이다. 특히 이 전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트리엔날레 디자인 전시관'에서 열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도자공예에서는 이강효 작가의 분청사기와 이기조 작가의 백자작품들이 소박하고 고졸한 멋을 드러내고 있다. 기하학적인 분청과 감각적이고 구조적인 백자가 함께 비치돼 있다. 한지 분야는 삼층으로 구성된 종이 서랍장인 '삼층지장'이 선보였다. 가구 골격을 만드는 목공작업은 박명배 장인이, 문경 닥나무를 재료로 한 한지를 붙이는 작업인 배첩과 내부 조명 설치는 한경화 작가가 맡았다. 아주 얇은 한지를 정성스레 꼬아 만든 '지승 그릇'처럼 한지의 또 다른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침선장 김효중과 9인의 한산모시 장인이 만든 수많은 조각보들은 세련미를 물씬 풍기고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도 손색없다. 자투리 조각을 이어 만든 조각보는 옛날엔 창문 가리개, 칸막이 커튼, 식탁 덮개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금속공예에는 이봉주 장인의 방짜유기좌종(坐鐘)이 출품됐다. 좌종이란 작은 앉은뱅이 종으로 승가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악기다. 뜨겁게 달궈진 놋쇠를 수천 번 두드려 웅장하면서도 여운이 긴 소리를 만들어 낸다. 나전칠기 분야에선 황삼용 작가가 나전(조개껍질)을 하나하나 얇게 끊어 붙여가며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인 '끊음질'로 거대한 조약돌 모양의 오브제를 만들어 소개했다.
손혜원 예술감독은 "이 전시는 그동안 현대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시 기회가 적었던 전통장인들을 주체로 끌어 올리고, '한국의 미'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게 하는 데 의의가 크다"며 "지난해 처음 밀라노에 발을 디딘 우리 공예작품들은 절반 이상이 팔렸고, 일부는 대영박물관 등 유명 뮤지엄에 소장된 바 있다. 올해는 더 많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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