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안된다"에 끼워 맞추기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침대의 소중함을 깨치는 계기가 있었다. 우리집에는 10년도 넘게 쓴 침대가 있다. 킹사이즈로 아내의 방에 있다. 함께 쓰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방이 아닌 아내 방이 됐다. 이런 집 종종 있다. 냉전 때 소파에서 일주일 가량 잠을 잤다. 냉랭한 분위기보다 잠자리가 더 불편하다. 허리도 아프고, 자다 깨고, 땀은 차고. 생활이 엉망이 됐다. 슬그머니 아내 옆자리로 복귀했다. 다시는 이탈하지 않았다. 대치국면에선 침묵, 단식 등 다른 수단을 강구한다. 과연 침대는 '가구가 아닌 과학'이다.

자는 사람이 편안해야 제대로 된 침대다. 살인도구로 쓰인 침대도 있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an bed)의 침대'다. '아집과 편견'의 침대를 말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에 살던 강도다. 행인들을 집에 초대해 쇠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서 죽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의 왕이 된 테세우스에게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융통성이 없거나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하는 관용구로 쓰인다.

새누리당 유승민의원은 당·정·청회의에서 "이 정부가 성공하려면 '한 자도 못 고친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면서 "교조적으로 고집할 게 아니라 여건에 맞게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교조적 고집'은 '아집과 편견'보다 어감이 훨씬 강하다.


정부와 청와대는 박대통령의 '경직된' 지시를 '교조적'으로 받들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증세 없다'이다.


공약이행을 위해 135조원이 필요해도, 구멍난 예산 12조원을 메우고 경기를 부양하려고 추경예산을 편성한다면서도, 돈이 없어 정부가 일을 못하는 '재정 절벽(Fiscal Cliff)'이 생길 수 있다고 겁을 주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단언한다. 박대통령의 '증세는 없다"는 한마디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돼 모든 정책을 여기에 맞추고 있다. 세무조사를 강화해 누구를 혼내주고 부가세를 카드사가 걷게 하겠다는 둥 침대에 행정력과 정책을 맞추기에 급급하다. 새로운 세금을 만들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정상적인 조세재정정책마저 불가능해 졌다. '영구 없다~'보다 더 희극적이다.


세종시에 싱글사이즈의 침대가 생겼다. 아내가 청소도 해주고 하루는 자고 갔다. 둘이 자기에는 작은 침대다. 떨어질까봐 잠에서 깨기도 했다. 특별한 경우니까 싱글에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작은 침대에서 성장해 큰 침대로 옮기고 결혼을 하면 부부가 함께 잘 수 있는 침대를 마련해야 한다. 형편과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한다.


'교조적 고집'은 부메랑이 되어 실패를 낳는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죽은 이유다. '교조적 고집'을 바꾸라는 목소리가 크다. '공약을 외면하라'는 주장과 '세금을 더 걷으라'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후자의 손을 들어주겠다. 국민들에게는 이제 큰 침대가 필요하다. 결혼한 부부가 싱글침대에서 계속 잘 수는 없다. 킹사이즈는 아니라도 더블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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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국가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을 때 복지혜택을 크게 늘렸다. 사회간접자본(SOC)투자를 줄이고 세금은 더 걷었다. 우리만 예외일 수 없다. OECD는 사회보장비에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를 쓴다. 한국은 9%대다. 복지공약을 외면할 수 없고 세금을 늘리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더욱 없다.


결자해지(結者解之) 해야 한다. '아집과 편견' 의 침대를 편안한 '과학'의 침대로 바꾸는 몫은 일차적으로 박대통령에게 달려있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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