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 저詩]김명인의 '저 능소화' 중에서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몇 송이로 펼치는 생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천근 사랑 같은 것,/그게 암 덩어리라도 불볕 여름을 끌고/피나게 기어가 그렇게 스러질/너의 여름 위에 포개리라

김명인의 '저 능소화' 중에서

■ 능소화를 처음 본 것은 진안 마이산의 벼랑이었다. 산 덩어리가 온통 바위 하나인 그 한 복판에 붉은 화등을 달고 피어있는 꽃이 강렬했다. 영어로 트럼펫 크리퍼(trumpet creeper)라고 부르는 이 꽃은 한번 피면 쉬 꽃송이를 내려놓지 않고 한달 이상씩 매달고 있다. 공들여 하나하나 곱게 피워낸 것들을 쉬 버릴 수 없는 애착 때문일까. 왜 그냥 능소화가 아니고 '저' 능소화였을까. 절벽에 붙은 능소화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저'는 그 상승의 거리다. 지금은 아직 낮지만 존재의 모든 상처들을 지고 올라갈 자리다. 능소화를 암 덩어리로 피워올린 시인의 눈에는, 세상과의 처연한 불화를 통해 더욱 긴장하는 아름다움이 보였는지 모른다. 뜨거운 여름날 불덩이같은 바위를 기어올라가는 능소화의 독종같은 생명력. 그 풍경을 들끓는 기분으로 읽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회에 늘어선 '돌아와요 한동훈' 화환 …홍준표 "특검 준비나 해라"

    #국내이슈

  •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수리비 불만에 아이폰 박살 낸 남성 배우…"애플 움직인 당신이 영웅"

    #해외이슈

  •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 세종대왕동상 봄맞이 세척 [이미지 다이어리] 짧아진 봄, 꽃놀이 대신 물놀이

    #포토PICK

  •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부르마 몰던 차, 전기모델 국내 들어온다…르노 신차라인 살펴보니 [포토] 3세대 신형 파나메라 국내 공식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 용어]정부가 빌려쓰는 마통 ‘대정부 일시대출금’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