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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값 내가 올리는데 왠 참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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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무너진 아파트 공동체 문화.. 아파트 부녀회의 파워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용인 죽전에 사는 양형무씨(49세). 배달 등 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아내와 아파트 단지내 상가에 치킨집을 지난해 초 인수,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장사여서 남들 하는대로 홍보스티커를 아파트 단지내 곳곳에 부착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파트 부녀회에서 호출이 떨어졌다. 치킨 몇마리 들고 부녀회장을 찾은 부부는 부녀회장의 불호령에 깜짝 놀랐다. 다짜고짜 "허락도 없이 함부로 홍보물을 붙였느냐. 당장 떼라"고 아우성이었다. 양씨는 "경험이 없어 그랬다. 나도 주민인데 좀 봐달라"며 통사정했다. 결국 홍보물 부착 및 투입조건으로 50만원을 내기로 부녀회와 협상한 다음에야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양씨는 효도관광 등 부녀회 행사 때마다 협찬 명목으로 금일봉을 전달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마다 부녀회가 있다. 자유롭게 조직된 임의조직이지만 주거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단지 내 노인 봉사, 알뜰장터 운영, 단지 가꾸기 등을 주도하며 반상회 등을 통해 여론을 만들기도 하고, 입주자대표회의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이를 순기능이라고 보면 부작용도 적잖다. 아파트 가격 담합에 나서는 경우도 있고, 이권에 개입하는 등의 문제로 갈등을 낳는다. 우리 아파트 문화에서 부녀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이들의 활동에 따라 이웃들이 화합하기도 하고, 때로 갈등과 반목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일들이 허다하다.
 아파트 부녀회의 힘은 막강하다. 주변 상인들에게 부녀회는 잘 모셔야할 상전(?)이다. 이들이 한번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면 그날로 장사를 접어야 할 정도다. 그래서 관계유지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양씨같은 소상인들은 "부녀회가 장사하는 이들의 푼돈 뜯는 것마저 주저하지 않는다"고 분개한다.

 양씨는 "우리가 아파트 주민이라서 이 정도로 타협했지만 부녀회와 마찰을 빚는 상인들도 여럿 있다"며 "부녀회 대표들에게 밉보이면 단지내 장사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아파트 수익모델의 하나인 '알뜰장터'도 변질됐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부녀회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요구하거나 회계, 감사의 불투명한 때문이다. 실례로 지난해 봄 경기 광주시의 한 아파트 부녀회장과 회원 일부가 4박5일 중국 쿤밍으로 여행을 다녀온 이후 부녀회 기금 유용 논란이 인 적도 있다. 알뜰 장터, 홍보 게시판 운영, 단지내 상인 유치 등으로 수수료를 받으면서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사례다. 유용 및 비위 등으로 소란스러운 경우도 많다.이런 갈등은 그저 갈등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 공동체생활이 삽시간에 분열돼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어느 단지나 한번쯤 겪는 일들이다.

 ◇아파트 가격 담합도 부지기수= 아파트 부녀회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가격 담합이다. 지난해말 경기 광명시의 한 아파트단지가 가격 담합 논란에 휩싸였다. 입주자 카페를 통해 아파트 부녀회가 "모두 매물을 회수하라"고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물건이 없어야 가격이 오른다는 계산에서였다. 또한 일정선 이하로는 절대 팔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인터넷 등에서는 2006∼2007년 집값 급등기에 극성을 부린 아파트 부녀회의 집값 담합에 대한 '데자뷰'라는 힐난이 이어졌다. 당시 부녀회들은 가격 담합에 협조하지 않는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주지 않거나, 퇴출시키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현장 실태조사 등 담합 근절에 나섰지만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파트 입주민들을 사로잡은 망상이 부녀회를 통해 나타난 셈이다. '내 집값이 더 많이 올라야한다'는 이기심은 부녀회마다 집값 띄우기 경쟁을 벌이도록 했다. 아파트 공동체 문화의 어두운 일면이다. 20여년전 평당 200만원 수준이던 아파트 분양가가 최근 2000만원을 오르내리다보니 섣부른 욕망이 아파트 거주민들의 그릇된 욕망을 키운 셈이다. 

 학자들은 "집이 오늘날 고통과 희망의 뿌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일단 집을 마련하고 나면 사람들은 집값의 유혹에 사로잡힌다. 우리 집은 절대로 다른 집보다 더 올라야 한다는 관념을 만든다. 그래서 부녀회가 나서 중개업자들을 감시하고, 때로 협박하고,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이웃들이 값을 낮춰 집을 내놓지 못하도록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을 연출해 왔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지금은 집값이 떨어지고 있어 잠잠하지만 조금이라도 오르는 기미가 있으면 다시 담합을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계했다. 가격 담합은 법적 처벌도 쉽지 않아 아파트 부 및 주민들 스스로 자제해야하는 것 외에 사실상 방법이 없다.

 ◇주민간 대화와 협력 절실= 그렇다고 부녀회가 부정적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 용인 구갈지구 내에는 국민임대아파트단지 하나가 민간아파트 단지 사이에 끼여 있다. 임대단지와 민간단지는 서로 인접해 아파트 관리나 주변 청소, 단지 가꾸기 등 여러 문제로 한동안 마찰을 빚어왔다. 민간아파트 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다 같은 도로를 쓰고 있어 주변 청소 및 화단 정리 등 공동으로 대처할 일이 많았다"며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참여가 부족해 불만이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아이들의 교류를 막기조차 했다.인근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임대주택과 민간아파트 입주자 자녀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어 갈등은 아이들에게까지 미쳤다. 임대주택단지 거주자들은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도 학원에 가지 못하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던 차에 임대아파트 단지내 옥상에서 인근 중학생들이 모여 술을 마시다 적발된 일이 발생했다. 졸지에 임대아파트단지가 우범지대로 변한 것이다. 이에 민간아파트 부녀회가 대화를 시도하러 나섰다. 자녀들 교육문제만큼은 임대아파트 주민과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민간과 임대단지 아파트 부녀회간 대화는 순조롭게 풀렸다. 그러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두 부녀회는 야간에 임대아파트 옥상 출입구를 폐쇄하는 것은 물론 지역 자율방범활동을 공동으로 전개하는데 합의했다. 그들은 함께 자율방범대를 꾸렸다.

 자율방범활동은 '우산 함께 쓰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과거엔 비오는 날이면 학교 앞에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나온 민간아파트 부녀들만 북적였다. 비를 후줄근하게 맞으며 하교하는 임대주택 아이들과 대비됐다. 이에 민간아파트 부녀회가 '비맞는 아이들'을 함께 데려다주기로 하면서 서로의 닫힌 마음이 한걸음 더 열렸다.

 이들 부녀회는 매달 1회 공동 반상회를 열어 함께 얘기를 나눈다. 그 결실로 공동마을 가꾸기, 공동 야유회, 주민화합잔치, 사회봉사활동, 노인잔치 등을 함께 하고 있다. 민간아파트 사는 아이들 중에는 임대아파트 단지내 어린이 공부방을 이용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어 아파트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련 학자들도 상당히 주목하기도 했다.

 ◇아파트 여론 형성, 대표자 견제 역할도= 아파트 부녀회는 입주자대표회의와 더불어 아파트 생활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부녀회는 대표회의를 감시하기도 한다. 관리비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사업계획 예산안 편성, 수립, 복리시설 사용료 등 잡수입에 대한 관리의 적정성ㆍ절감 노력에 동참하는 한편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를 견제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실질적인 성과를 낸 곳도 많다.

 2010년 용인 수지의 한 아파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입주대표회장과 관리소장이 관리비를 지속적으로 횡령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입주민은 부녀회장도 한통속이라는 걸 알고는 적극적으로 회장에 출마, 당선된 이후 비리를 전면 조사했다.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100여가구에 이르는 대단지인데도 연간 30여억원에 이르는 관리비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회계마저 불투명했다. 매달 석연치 않은 명목으로 수백만원씩 흘러나가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한 부분도 드러났다. 부녀회장은 뜻을 같이하는 부녀회원들을 규합해 7500여만원을 회수하고 회계규정들을 개선했다.

 요즘은 부녀회에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분위기다. 노인세대 등의 자활 증진을 위한 사회적 기업의 유치, 협력, 지속적인 운영 발전, 단지 내 일자리 창출 등 수익모델의 개발 등에 아파트 부녀회의 손길을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 커뮤니티 연구가인 이상헌 박사는 "최근 들어 입주자 카페 등 새로운 커뮤니티가 등장해 단지 주민들의 대화공간이 늘어나면서 부녀회의 역할이 축소되는 측면이 있다"며 "아파트 부녀회가 자발적인 아파트 공동체 문화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부녀회가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가꾸는 활동, 입주민 소통 노력, 다양한 나눔, 봉사ㆍ화합의 문화를 육성해나가는 데 더욱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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